2026년 2월 22일 일요일

[인생이야기]첫 아이를 안았던 기쁨, 그리고 시어머니의 비교 속에 얼룩진 산후조리

인생이야기 첫 아이를 안았던 기쁨, 그리고 시어머니의 비교 속에 얼룩진 산후조리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벅차오르는 순간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첫아이를 품에 안았던 그날을 말하곤 합니다. 열 달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마주한 아이의 모습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핏덩이 같은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제 검지를 꼭 쥐었을 때, 저는 비로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진짜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올랐습니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부모가 되었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교차하며, 세상 모든 풍경이 이전과는 다르게 아름답고 찬란해 보이던 축복 같은 찰나였습니다.

​하지만 그 벅찬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마주한 현실은 차갑고 높기만 했습니다. 산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친정엄마의 따뜻한 손길이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어머니께서 산바라지를 위해 오시게 되었습니다. 만약 친정엄마가 곁에 계셨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너는 꼼짝도 하지 말고 누워만 있어라" 하시며 미역국부터 아기 기저귀 가는 일까지 손수 다 챙겨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후조리를 해주러 오셨다던 시어머니는 오히려 며느리에게 대접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몸조리에 집중해야 할 산모가 오히려 어른의 눈치를 보며 수발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니, 육체적인 고단함보다 마음의 허기가 먼저 찾아왔던 참으로 서글프고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시어머니는 산바라지를 해주시는 기간 내내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변 사례와 비교하며 사사건건 훈수를 두셨습니다. 당시 시댁에는 저와 상황이 비슷한 다른 가족들이 이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었습니다. 아기 목욕을 시키는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시어머니는 뒤에서 "누구는 손놀림이 얼마나 야무진지 모른다, 너는 왜 그리 서투냐"며 혀를 차셨고,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면 "누구는 젖이 잘 나와서 애가 통통하게 살이 오르던데 너는 애를 왜 저렇게 울리냐"며 저의 부족함을 타박하셨습니다. 모든 일상에 사사건건 비교가 따라붙으니 나중에는 아이를 돌보는 일조차 겁이 났고, 시어머니가 입만 열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정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어른들은 왜 그리도 산모의 여린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고 야속하게만 구셨는지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첫아이를 낳고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겨우 퇴원시켜 온 초보 엄마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보듬어주기는커녕, 며느리를 부리듯 대접만 받으려 하셨던 그 모습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젖몸살로 가슴이 돌덩이처럼 굳어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 와중에도, 시어머니의 매서운 눈총이 무서워 신음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하고 홀로 눈물을 삼켰던 그 삼칠일의 기억은 저에게 따뜻한 몸조리가 아니라 지독하게 서러운 기억으로 박제되었습니다. 산모에게 가장 절실했던 정서적 안정이 끊임없는 비교와 질책 속에 무참히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렇게 서러움을 견디며 시작된 엄마로서의 삶은 어느덧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저를 단단한 자영업자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던진 모진 비교의 말들과 대접받으려던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저를 이 거친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게 한 독한 의지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내 힘으로 당당하게 성공해서 보여주리라' 다짐하며 험난한 세월을 버텨온 강력한 원동력이 바로 그 산방에서의 눈물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62세라는 나이에 도달하여 지난날을 회상해보니, 그 모진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든 밑거름이 되었음을 느낍니다. 이제야 그 시절 숨죽여 울며 견뎌냈던 젊은 날의 나 자신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참 장하다, 너 정말 멋지게 잘 해냈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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