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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5일 수요일

인생이야기: 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후회와 미련의 시간들

 인생이야기: 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후회와 미련의 시간들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기업 다니는 남편 덕에 남부러울 것 없는 안주인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속사정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습니다. 35년 전, 둘째를 가졌을 때 저는 지독한 입덧으로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덜컥 가게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새로 들어갈 집의 대출이자와 앞으로 들어갈 생활비가 걱정된다는 이유였지요. 그 이기적인 선택 앞에서 저는 왜 더 강하게 대항하지 못했는지, 지금도 그 시절의 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 뜻대로 주장을 펴지 못한 그때의 제가 너무나 한심하고 바보 같습니다. 남편의 성격이 워낙 불같고 강하다 보니 무엇 하나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 지금 너무 힘들다", "나는 지금 일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다"라고 소리라도 한번 질러볼걸, 왜 그렇게 입술만 깨물며 순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며 남들보다 돈도 잘 벌어오면서, 정작 본인은 번듯한 새 차를 사서 기분을 내는 동안 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밤낮없이 미싱 앞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열 달 내내 헛구역질을 참아가며 미싱 페달을 밟던 그 시간이, 이제와 생각하니 저 자신을 너무나 아끼지 않았던 학대와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속사정 모르는 이웃들은 물론이고, 하물며 친정 식구들까지도 저를 타박했습니다. "남편이 대기업 다녀서 돈도 잘 벌어다 주는데, 대체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아서 쉬지도 않고 저렇게 미싱을 돌리느냐"는 소리였죠. 그 비수 같은 말들을 들으면서도 저는 남편 흉이 될까 봐, 우리 집 사정 들킬까 봐 끝내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좀 미련하게 일 욕심이 많네요" 하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 모습이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속상하고 제 자신이 가련하기까지 합니다. 왜 나는 나를 지키지 못하고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았을까요.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며 '내 주장'보다는 '순응'과 '양보'를 미덕이라 배우며 자란 탓이었을까요. 남들은 저더러 생활력 강하고 억척스럽다 칭찬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 속은 후회와 자책으로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멋대로 저지른 가게 계약이었지만, 저는 그 억울함을 항의하는 대신 미싱 바늘에 제 서러움을 녹여냈습니다. 남편은 새 차를 타고 세상을 누볐지만, 저는 좁은 가게 안 미싱 불빛 아래서 제 청춘과 건강을 갉아먹고 있었던 셈입니다. 35년 자영업 인생의 첫 단추가 이토록 서글픈 굴종과 침묵이었다는 사실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슴을 아프게 후빕니다.

이제야 긴 세월을 지나 고백합니다. 저는 결코 돈 욕심이 많아서 그 고생을 자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절할 줄 몰랐고, 내 목소리를 낼 줄 몰랐던 바보 같은 착한 아이였을 뿐입니다. 혹시 지금의 저처럼 누군가의 강한 성격에 눌려, 혹은 등 떠밀림에 힘겨운 짐을 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부디 저처럼 후회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몸과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니라고 말이죠. 저의 이 못난 후담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지키는 작은 용기가 되고, 저 자신에게는 오랜 응어리를 풀어내는 치유의 기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2026년 2월 24일 화요일

인생이야기: 입덧 속에 치러진 상가 계약, 35년 전 그날의 서글픈 풍경

 

인생이야기: 입덧 속에 치러진 상가 계약, 35년 전 그날의 서글픈 풍경

첫째 때부터 이어진 장사, 그리고 입덧과 함께 찾아온 둘째

저는 첫째 아이를 키울 때부터 이미 장사 전선에 뛰어들어 쉼 없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홈패션 가게를 꾸려가며 8남매 일곱째 특유의 성실함으로 버텼지만, 새 아파트로 이사할 무렵 둘째가 생겼을 때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유독 입덧이 심한 체질이라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었고, 이사까지 겹치니 만사가 귀찮아 그저 이번만큼은 조금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첫째를 키우며 장사하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제게, 둘째 임신은 잠시 쉬어갈 핑계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입니다.

아내의 고통보다 앞섰던 남편의 독단적인 상가 계약

하지만 남편은 제 몸 상태나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입덧으로 기운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남편은 저와 상의 한마디 없이 혼자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아파트 상가를 혼자 돌아다니더니, 제가 장사를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인지 묻지도 않고 덜컥 상가 가게를 계약하고 온 것입니다. 이미 장사로 뼈가 굵어가는 아내가 입덧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남편은 '돈 벌어야 한다'는 자기 욕심과 판단만으로 제 앞날을 멋대로 결정해버렸습니다.

상가 주인도 몰랐던 와이프의 존재와 서글픈 소외

더 기가 막힌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 당시 상가 주인은 제 존재 자체를 전혀 몰랐다고 하더군요. 남편이 혼자 와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처리하니, 당연히 남편이 직접 운영할 가게인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몸을 부딪치며 재봉틀을 돌리고 손님을 맞이해야 할 사람은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약의 주체에서도, 결정의 과정에서도 철저히 배제된 '투명 인간'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제 의사가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가슴에 깊은 멍으로 남았습니다.

'생활비'로 증발한 나의 피땀, '저축'으로 쌓인 남편의 자산

그렇게 등 떠밀리듯 시작된 장사에서 남편은 교묘한 경제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네가 버는 돈은 생활비로 쓰고, 내 돈은 저축하자"는 규칙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처럼 각자 관리하는 합리적인 관념은커녕, 제가 번 돈은 가족의 끼니와 생활비라는 명목 아래 흔적 없이 사라지는 소모품이 되었습니다. 15년 홈패션과 20년 식당, 도합 35년 동안 제가 흘린 땀은 생활비라는 늪에 빠져 증발했고, 남편의 수익은 고스란히 그의 자산으로만 쌓였습니다. 생활비를 우습게 여기는 남편의 태도 속에 제 노동의 가치는 늘 당연한 희생으로 치부되었습니다.

35년의 후회를 기록하며, 요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면 잘 살 줄 알았다"는 제 믿음이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입덧으로 힘든 아내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계약을 진행했을 때, 왜 저는 요즘 사람들처럼 "내 돈은 내 돈, 네 돈은 네 돈"이라며 당당하게 제 몫을 주장하지 못했을까요. 제가 굳이 이 아픈 기록을 https://www.google.com/search?q=lucky-seven-life.com에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요즘 젊은 분들은 저처럼 '바보같이' 참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지 말고, 처음부터 현명하게 자기 삶과 경제권을 지키며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뼈아픈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현명하게 꾸려가는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서른아홉 늦둥이의 온기, 그리고 한 달 만에 마주한 차가운 현실

 막둥이를 낳고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휴식을 꿈꿨습니다. 서른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찾아온 귀한 생명이었기에, 앞선 두 딸을 낳고 몸조리도 못한 채 일터로 달려가야 했던 그 서러운 세월을 보상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야속하게도 이전과 똑같이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