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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인생이야기] 35년의 인내, 나를 지우고 남편의 그림자로 살았던 세월

 

[인생이야기] 35년의 인내, 나를 지우고 남편의 그림자로 살았던 세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장사꾼으로, 어머니로 살아오며 제 이름 석 자보다 '누구의 엄마', '사장님'으로 불리는 것이 익숙했습니다. 밖에서는 15년 홈패션과 20년 식당을 운영하며 거친 풍파를 다 이겨낸 여장부 소리를 들었지만, 정작 집 안에서는 남편의 독단과 이기심 앞에 숨죽여야 했던 초라한 아내였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위주로 돌아가야 하고, 자식도 아내도 본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남편 곁에서 저는 35년이라는 긴 세월을 영혼이 깎여나가는 기분으로 버텼습니다. 존중받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처절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상처는 늦둥이 아들이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앞선 두 아이를 낳고 몸조리도 못한 채 차가운 원단 더미 사이에서 미싱 페달을 밟았던 한을 이번만큼은 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5년 정들었던 홈패션 가게를 정리하고 권리금 계약까지 마쳤는데, 남편은 본인의 욕심 때문에 그 소중한 계약을 자기 멋대로 파기해 버렸습니다. 아내가 겪을 신체적 고통이나 간절한 소망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돌아가야 한다는 그 이기심이, 한 여자가 평생 꿈꿔온 마지막 휴식과 엄마로서의 시간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 것입니다.

남편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모든 결정권은 본인에게 있어야 하고, 가족들은 그저 자신의 뒤를 따르는 존재로 여깁니다. 제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욕설이 섞인 거친 말투와 나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그 천박한 태도였습니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어도 바른 마음으로 자라온 제게, 남편의 강압적인 방식은 매일매일이 영혼의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울타리를 지켜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35년을 참았지만, 돌아보니 남은 것은 가슴 시린 후회와 텅 빈 마음뿐입니다.

제가 이혼을 꿈꾸는 이유는 거창한 행복을 바라서가 아닙니다. 그저 남은 생만이라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 자신을 존중하며 평온하게 숨 쉬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 말이 무시당하지 않고, 내 결정이 존중받는 평범한 일상이 제게는 평생 가닿지 못한 꿈이었습니다. 35년 장사 끝에 남은 것은 굽은 손마디와 고단한 몸뿐인데, 남편은 여전히 저의 희생을 당연한 권리처럼 생각합니다. 이제는 저를 묶어두었던 그 지독한 모성애라는 족쇄를 내려놓고, '착한 바보'로 살았던 지난날의 저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블로그에 이 아픈 속내를 털어놓는 것은, 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 곁에서 자신을 죽이며 사는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닙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곳에서는 과감히 발길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은 저처럼 인생의 끝자락에서 지난날을 가여워하며 눈물짓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자신을 가장 많이 아끼며 사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6년 2월 25일 수요일

인생이야기: 출산 휴가 아깝다며 나를 혼자 둔 남편, 그 서러웠던 출산 기록

 인생이야기: 출산 휴가 아깝다며 나를 혼자 둔 남편, 그 서러웠던 출산 기록

인생은 때때로 잔인할 만큼 공평하지 못합니다. 남들은 남편의 손을 잡고 가족들의 축복 속에 새 생명을 맞이한다고들 하지만, 제게는 그 당연한 풍경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30여 년 전, 첫딸을 낳던 날도 그리고 연이어 둘째 딸을 낳던 그 기막힌 날에도 저는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며 늘 북적이는 가족들 틈에 있었지만, 정작 내 인생의 가장 무거운 고비였던 출산의 순간만큼은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그 무서운 진통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야 했습니다. 제 남편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첫딸을 낳을 때가 아마 금요일이었을 겁니다. 당시 대기업은 출산 휴가를 며칠 주곤 했는데, 남편은 그 휴가가 주말과 겹치면 며칠 손해를 본다며 만삭인 저를 병원에 혼자 두고 출근을 해버렸습니다. 토요일 오전 근무까지 있던 시절이라 그 반나절, 하루 휴가를 아끼겠다고 산통이 시작된 아내를 외면한 것입니다. 저는 차가운 병원 침대 위에서 밀려오는 공포와 싸우며 밤새 산통을 겪었고, 결국 이튿날 아침에야 홀로 첫딸을 받아냈습니다. 곁에서 손을 잡아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이 뼛속까지 시렸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3년 뒤 둘째 딸을 낳던 날은 더욱 기가 막혔습니다. 이미 첫째 때 경험이 있었기에 저는 집에서 밤새도록 짐승처럼 앓으며 고통을 견뎠습니다. 남편은 그 고통을 옆에서 다 지켜보고도 아침이 되자 매정하게 출근 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 결국 저는 시매부의 차를 빌려 타고서야 겨우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분만실에서 산통을 겪는 와중에 간호사가 의아한 듯 묻더군요. "밖에 계신 분은 누구시냐"고요. 남편이 아니라 시매부라고 대답했더니, 간호사가 혀를 차며 "참 어려운 사람과 왔다"고 합디다. 그 말이 어찌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던지요.

거짓말 같지만 모두 사실이고, 드라마 같지만 제가 직접 겪은 생지옥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대학병원에서 후두암 수술을 받으시던 그날, 저 또한 같은 하늘 아래 다른 병실에서 누구의 응원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 그 소리를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을 자상한 아버지는 수술로 인해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고 계셨고, 정작 곁에 있어야 할 남편은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배신감이 교차하던 그 폭풍 같은 순간에 제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구석을 시리게 만드는 깊은 흉터입니다.

세월이 흘러 30년 전 그날 홀로 낳았던 둘째 딸이 장성한 지금, 저는 블로그라는 세상에 그날의 서러운 기록을 꺼내 놓습니다. 35년 자영업의 파고를 넘고 신용회복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오며 제가 배운 것은, 결국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며 그 외로웠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출산 휴가 며칠에 아내를 버려두었던 이기적인 남편을 원망하기보다, 그 모진 세월을 혼자 버텨낸 제 자신이 대견해 눈물이 납니다. 62세 장사꾼 엄마의 도전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믿으며, 저는 오늘도 제 아픈 기억을 정성껏 기록해 나갑니다.

2026년 2월 22일 일요일

인생이야기 [62세 장사꾼 엄마의 새로운 도전, 구글 애드센스 승인을 기다리며]

 인생이야기 [62세 장사꾼 엄마의 새로운 도전, 구글 애드센스 승인을 기다리며]

1. 35년 장사 인생 끝에 마주한 '구글 애드센스'라는 문턱 홈패션 15년, 요식업 20년까지 도합 35년을 자영업자로 살면서 참 많은 손님을 치렀습니다. 이제는 은퇴하고 쉴 나이라지만, 저는 아들의 당뇨 관리 기록을 남기고 제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블로그라는 새로운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 가게의 정식 간판이라 할 수 있는 '구글 애드센스' 승인을 받기 위해 요즘 저는 난생처음 보는 용어들과 씨름 중입니다. 장사할 때 가게 문을 열려면 구청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듯, 제 블로그도 구글이라는 큰 시장에서 정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2. 한 번의 거절, 35년 뚝심으로 다시 도전하는 이유 사실 얼마 전 첫 번째 승인 요청에서 거절이라는 쓴맛을 보았습니다. 35년 장사하며 숱한 풍파를 겪었어도, 막상 "승인 취소"라는 통보를 받으니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장사도 처음 문 열었을 때 바로 대박이 나지 않듯, 블로그도 제 정성이 쌓여야 비로소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타 하나 없이 글을 다듬고, 큰애 다섯 살 때 최고급 아파트에 입성했던 그 시절의 열정을 되살려 다시 한번 구글의 문을 두드려 봅니다.

3. 애드센스 공부하며 깨달은 '정직한 콘텐츠'의 힘 승인을 준비하며 여러 정보를 찾아보니, 결국 구글이 원하는 것은 '진짜 자기 이야기'였습니다. 남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겪은 아들의 당뇨 관리나 25평 아파트 마련의 지혜 같은 생생한 경험 말입니다. 이것은 20년 식당을 하며 조미료 대신 천연 재료로 맛을 내야 단골이 생기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습니다. 제가 살아온 62년의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구글 애드센스라는 승인 과정을 통해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4. 62세 청춘에게 블로그는 인생의 새로운 보금자리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때로는 재봉틀 돌리는 것보다 어깨가 아프고 눈이 침침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렙니다. 애드센스 승인을 기다리는 이 시간은 마치 식당 개업 전날, 깨끗하게 닦인 식탁을 보며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습니다. 단순히 광고 수익을 얻는 것보다, 제가 정성껏 차린 이 '글방'이 구글이라는 큰 무대에서 정식으로 합격점을 받는 그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고 싶습니다.

5. 멈추지 않는 도전, 마침내 열릴 승인의 문 큰애가 다섯 살 때 동네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에 입주하며 느꼈던 그 기쁨을, 이제는 애드센스 승인이라는 소식으로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 35년 자영업의 파고를 넘고 신용회복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저에게 이 도전은 '아직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입니다. 이번에 다시 검토 요청을 누르며, 저는 확신합니다.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고, 62세 엄마의 정직한 기록은 반드시 구글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도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승인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서른아홉 늦둥이의 온기, 그리고 한 달 만에 마주한 차가운 현실

 막둥이를 낳고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휴식을 꿈꿨습니다. 서른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찾아온 귀한 생명이었기에, 앞선 두 딸을 낳고 몸조리도 못한 채 일터로 달려가야 했던 그 서러운 세월을 보상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야속하게도 이전과 똑같이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