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환경엑스포공원'**이라는 반듯한 이름으로 불리는 곳.
사람들은 깔끔하게 잘 닦인 산책로와 화려한 전시관을 보며 감탄하지만, 내 눈에는 그 너머의 풍경이 겹쳐 보입니다.
내 기억 속의 그곳은 인공적인 공원이 아니라, 앞에는 끝없는 벌판이, 뒤에는 서늘한 바다가, 그리고 양옆으로는 생명력 넘치는 강물이 흐르던 '나의 낙원'이었습니다.
학교 종소리가 멈추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내 일과는 소를 몰고 나가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어른들은 소 꼴을 먹이러 가라고 하셨지만, 우리에겐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놀이 시간이었지요.
강가 너른 풀밭에 소들을 대충 풀어놓으면 소들은 알아서 느릿느릿 풀을 뜯었습니다. 그 평화로운 광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강물로 뛰어들었습니다.
햇살에 달궈진 피부가 차가운 강물에 닿을 때의 그 짜릿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자맥질을 하고, 서로 물을 튀기며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배꼽시계가 울릴 때쯤이면 우리는 '강가 식당'을 차렸습니다.
집에서 몰래 챙겨온 쌀을 찌그러진 깡통에 담고, 강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지폈습니다.
반찬이라고는 강바닥을 훑어 잡아낸 싱싱한 재첩이 전부였습니다.
깡통 속에서 보글보글 밥이 익어가는 냄새가 강바람을 타고 퍼지면,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갓 지은 깡통 밥에 재첩 몇 알 얹어 먹던 그 소박한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꿀맛이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강물이 붉게 타오를 때쯤이면, 강변의 매끄러운 돌들을 주워 공기놀이를 했습니다.
"이제 집에 가야지!" 누군가 외치기 전까지 우리는 그 황금빛 풍경 속에서 하나가 되어 웃었습니다.
나의 고향, 그곳은 제2의 우포늪이었습니다
우포늪전경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닌,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란 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소중한 경험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생태계의 보고라며 찾는 우포늪이나 순천만을 볼 때면, 저는 엑스포 공원 아스팔트 아래 묻혀버린 제 고향 강변이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지곤 합니다.
1.자연이 선사한 천연 간식: 해당화와 찔레의 가치
지금은 보호구역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들이 그 시절엔 우리의 훌륭한 주전부리였습니다.
(우리가 따먹던 해당화열매)
해당화 열매: 붉게 익은 해당화 씨를 발라 먹을 때의 그 독특한 풍미는 자연이 준 천연 비타민이었습니다.
찔레꽃대: 봄철 연한 찔레꽃대의 껍질을 까먹던 기억은 배고픔을 달래주던 달큰한 추억이자, 자연의 생명력을 직접 섭취하던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2. 살아있는 생태 체험: 말동구리와 개구리 사냥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 강가는 거대한 자연 학습장이었습니다.
말동구리(소똥구리): 소들의 워낭소리를 따라다니며 말동구리가 경이롭게 굴리던 경치를 지켜보는 것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관찰 놀이였습니다.
개구리 구이: 직접 잡은 개구리를 모닥불에 구워 먹던 경험은 원초적인 생존 본능과 자연의 맛을 동시에 일깨워준 개인적인 식문화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3. 환경 변화와 기록의 중요성: 나의 개인적 소견
현재 고향의 강변은 엑스포 공원의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여 옛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도시 개발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자연 습지와 생태계가 사라진 점은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장소는 변해도 그 안에서 얻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강인한 정신력은 제 인생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의 가치를 되새기고 정서적 회복을 돕는 '마음의 이정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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