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인생 이야기]멍석 위 흑백 TV에서 첫 아이스크림의 달콤함까지: 우리 집 문명 상륙기

1. 전기가 들어오고, 어둠이 걷히던 날
​제가 일곱 살 되던 해,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인 저와 어린 동생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집안 가득 고인 어둠 같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호롱불 밑에서 그림자놀이를 하던 밤들이 가고,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가 눈이 부시게 빛나던 그날의 설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기는 적막했던 우리 집뿐만 아니라, 어린 세 자매의 마음에도 작은 빛을 비춰주는 것 같았습니다.

2. 남의 집 마당, 멍석 위에서 배운 부러움
​전기가 들어오고 얼마 뒤, 마을 부잣집에 흑백 텔레비전이 들어왔습니다. 
저녁만 되면 우리 막내 세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안방은 이미 어른들로 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지요.
​주인집 아주머니는 마당에 커다란 멍석을 펴주셨습니다. 
우리는 밤이슬이 내려 옷이 눅눅해지는 줄도 모르고 그 멍석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쑥 연기 피워 올리며 모기를 쫓던 여름밤, 흑백 화면 속 김일 선수의 박치기 한 방에 온 동네가 떠나가라 함성을 지를 때면, 엄마 없는 서러움도 잠시 잊은 채 까르르 웃곤 했습니다.

3. 우리 집 안방이 동네 사랑방 된 날
​남의 집 멍석 위를 기웃거리던 우리 세 자매에게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장성한 언니들이 돈을 모아 우리 집에도 텔레비전을 사 온 것입니다! 
더 이상 밤이슬 맞으며 남의 집 마당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안방 대자로 누워 TV를 볼 수 있게 된 날, 우리 세 자매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안방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새로운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늘 부러워만 하던 우리가 처음으로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된 소중한 시절이었습니다.

4. 뒤이어 찾아온 또 하나의 기적, 냉장고
​TV의 즐거움에 한창 빠져 지내던 시간들이 흐르고, 언니들은 또 하나의 큰 선물을 들고 왔습니다. 
바로 냉장고였습니다. TV만큼이나 신기했던 그 하얀 가전제품은 우리 삶을 또 한 번 바꿔놓았습니다.
​냉동실 문을 열면 쏟아져 나오던 신비로운 하얀 냉기, 그리고 그 속에서 처음 꺼내 먹었던 아이스크림. 입안에 넣는 순간 혀끝이 짜릿할 정도로 차가웠지만, 이내 사르르 녹으며 온몸으로 퍼지던 그 달콤함은 일곱 살 엄마를 잃은 뒤 제가 맛본 가장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5. 멍석 위에서 쌓아 올린 그리움
​이제는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를 보는 세상이 되었지만, 저는 가끔 그 시절 멍석 위 밤공기가 그립습니다.
 비록 엄마는 곁에 없었지만, 서로의 체온을 나누던 세 자매와 동생들을 위해 땀 흘린 언니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실 때면, 그 시절 우리 세 자매가 나누어 먹던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따뜻했던 그 마당의 풍경이 떠오르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어린 시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던 귀한 물건이나 잊지 못할 첫 맛의 기억이 있으신지요? 
저처럼 멍석 위에 앉아 텔레비전을 구경하던 그리운 밤들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그때의 순수했던 설렘을 떠올려보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추억도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함께 추억하며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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