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입덧 속에 치러진 상가 계약, 35년 전 그날의 서글픈 풍경
첫째 때부터 이어진 장사, 그리고 입덧과 함께 찾아온 둘째
저는 첫째 아이를 키울 때부터 이미 장사 전선에 뛰어들어 쉼 없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홈패션 가게를 꾸려가며 8남매 일곱째 특유의 성실함으로 버텼지만, 새 아파트로 이사할 무렵 둘째가 생겼을 때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유독 입덧이 심한 체질이라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었고, 이사까지 겹치니 만사가 귀찮아 그저 이번만큼은 조금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첫째를 키우며 장사하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제게, 둘째 임신은 잠시 쉬어갈 핑계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입니다.
아내의 고통보다 앞섰던 남편의 독단적인 상가 계약
하지만 남편은 제 몸 상태나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입덧으로 기운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남편은 저와 상의 한마디 없이 혼자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아파트 상가를 혼자 돌아다니더니, 제가 장사를 계속할 수 있는 형편인지 묻지도 않고 덜컥 상가 가게를 계약하고 온 것입니다. 이미 장사로 뼈가 굵어가는 아내가 입덧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남편은 '돈 벌어야 한다'는 자기 욕심과 판단만으로 제 앞날을 멋대로 결정해버렸습니다.
상가 주인도 몰랐던 와이프의 존재와 서글픈 소외
더 기가 막힌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 당시 상가 주인은 제 존재 자체를 전혀 몰랐다고 하더군요. 남편이 혼자 와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처리하니, 당연히 남편이 직접 운영할 가게인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몸을 부딪치며 재봉틀을 돌리고 손님을 맞이해야 할 사람은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약의 주체에서도, 결정의 과정에서도 철저히 배제된 '투명 인간'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제 의사가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가슴에 깊은 멍으로 남았습니다.
'생활비'로 증발한 나의 피땀, '저축'으로 쌓인 남편의 자산
그렇게 등 떠밀리듯 시작된 장사에서 남편은 교묘한 경제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네가 버는 돈은 생활비로 쓰고, 내 돈은 저축하자"는 규칙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처럼 각자 관리하는 합리적인 관념은커녕, 제가 번 돈은 가족의 끼니와 생활비라는 명목 아래 흔적 없이 사라지는 소모품이 되었습니다. 15년 홈패션과 20년 식당, 도합 35년 동안 제가 흘린 땀은 생활비라는 늪에 빠져 증발했고, 남편의 수익은 고스란히 그의 자산으로만 쌓였습니다. 생활비를 우습게 여기는 남편의 태도 속에 제 노동의 가치는 늘 당연한 희생으로 치부되었습니다.
35년의 후회를 기록하며, 요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면 잘 살 줄 알았다"는 제 믿음이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입덧으로 힘든 아내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계약을 진행했을 때, 왜 저는 요즘 사람들처럼 "내 돈은 내 돈, 네 돈은 네 돈"이라며 당당하게 제 몫을 주장하지 못했을까요. 제가 굳이 이 아픈 기록을 https://www.google.com/search?q=lucky-seven-life.com에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요즘 젊은 분들은 저처럼 '바보같이' 참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지 말고, 처음부터 현명하게 자기 삶과 경제권을 지키며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뼈아픈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현명하게 꾸려가는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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