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후회와 미련의 시간들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기업 다니는 남편 덕에 남부러울 것 없는 안주인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속사정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습니다. 35년 전, 둘째를 가졌을 때 저는 지독한 입덧으로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덜컥 가게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새로 들어갈 집의 대출이자와 앞으로 들어갈 생활비가 걱정된다는 이유였지요. 그 이기적인 선택 앞에서 저는 왜 더 강하게 대항하지 못했는지, 지금도 그 시절의 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 뜻대로 주장을 펴지 못한 그때의 제가 너무나 한심하고 바보 같습니다. 남편의 성격이 워낙 불같고 강하다 보니 무엇 하나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 지금 너무 힘들다", "나는 지금 일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다"라고 소리라도 한번 질러볼걸, 왜 그렇게 입술만 깨물며 순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며 남들보다 돈도 잘 벌어오면서, 정작 본인은 번듯한 새 차를 사서 기분을 내는 동안 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밤낮없이 미싱 앞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열 달 내내 헛구역질을 참아가며 미싱 페달을 밟던 그 시간이, 이제와 생각하니 저 자신을 너무나 아끼지 않았던 학대와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속사정 모르는 이웃들은 물론이고, 하물며 친정 식구들까지도 저를 타박했습니다. "남편이 대기업 다녀서 돈도 잘 벌어다 주는데, 대체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아서 쉬지도 않고 저렇게 미싱을 돌리느냐"는 소리였죠. 그 비수 같은 말들을 들으면서도 저는 남편 흉이 될까 봐, 우리 집 사정 들킬까 봐 끝내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좀 미련하게 일 욕심이 많네요" 하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 모습이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속상하고 제 자신이 가련하기까지 합니다. 왜 나는 나를 지키지 못하고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았을까요.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며 '내 주장'보다는 '순응'과 '양보'를 미덕이라 배우며 자란 탓이었을까요. 남들은 저더러 생활력 강하고 억척스럽다 칭찬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 속은 후회와 자책으로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멋대로 저지른 가게 계약이었지만, 저는 그 억울함을 항의하는 대신 미싱 바늘에 제 서러움을 녹여냈습니다. 남편은 새 차를 타고 세상을 누볐지만, 저는 좁은 가게 안 미싱 불빛 아래서 제 청춘과 건강을 갉아먹고 있었던 셈입니다. 35년 자영업 인생의 첫 단추가 이토록 서글픈 굴종과 침묵이었다는 사실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슴을 아프게 후빕니다.
이제야 긴 세월을 지나 고백합니다. 저는 결코 돈 욕심이 많아서 그 고생을 자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절할 줄 몰랐고, 내 목소리를 낼 줄 몰랐던 바보 같은 착한 아이였을 뿐입니다. 혹시 지금의 저처럼 누군가의 강한 성격에 눌려, 혹은 등 떠밀림에 힘겨운 짐을 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부디 저처럼 후회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몸과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니라고 말이죠. 저의 이 못난 후담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지키는 작은 용기가 되고, 저 자신에게는 오랜 응어리를 풀어내는 치유의 기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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