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6일 월요일

[인생이야기] 35년을 참고 살아보니, 남은 것은 가슴 시린 후회뿐이었습니다

 

[인생이야기] 35년을 참고 살아보니, 남은 것은 가슴 시린 후회뿐이었습니다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어 지나온 세월을 가만히 돌이 보니,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허망하고 그저 후회스러운 마음뿐입니다. 밖에서는 15년 홈패션, 20년 식당을 운영하며 거친 세상 풍파 다 이겨낸 여장부 사장님 소리를 들었지만, 정작 집 안에서는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한 채 그저 무시당하고 험한 말을 들어도 입술만 깨물며 버텼던 바보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남을 위해 죽이며 살았는지, 이제야 그게 너무나 뼈아픈 회한으로 남습니다.

언젠가 TV에서 한 유명 아나운서가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고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를 낳고 참다가 결국 둘째까지 낳고 나서야 결단을 내렸다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왜 진작 안 했냐, 왜 둘째까지 낳아서 고생을 자초했느냐"고 묻더군요. 그 무심한 질문이 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은 절대 이해 못 할 그 속사정을 저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딸 둘을 낳고도 그 지옥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셋째인 늦둥이 아들까지 낳으며 무려 35년을 버텼던 사람입니다.

저는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어도, 집안에서 욕설 한마디 듣지 않고 바른 마음으로 자랐습니다. 그런 제게 화가 나면 입버릇처럼 욕부터 내뱉는 남편과 거친 말이 일상인 시댁의 분위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영혼의 고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욕설이 많이 나오는 한국 영화는 아예 보지도 않을 정도로 거친 말에 진저리를 칩니다. 하지만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여의고 그 시린 서러움을 뼈저리게 겪어본 저는,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절대로 그 외로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영혼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의 울타리는 지켜내겠다는 그 지독한 모성애가 저를 35년이나 묶어두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내가 한 번 참으면 집안이 조용해질 것이고, 내 아이들은 평온하게 공부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참으며 딸들은 선생님으로, 박사로 번듯하게 키워냈고 늦둥이 아들도 이제 제 앞가림하는 학생으로 자랐습니다. 자식 농사 잘 지은 게 유일한 훈장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아보려 하지만,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은 너무나 가엽고 눈물겹습니다. 내가 참으니 남들은 너무나 편안해했고, 저의 그 피눈물 나는 희생을 어느샌가 너무나 당연한 권리처럼 생각하더군요. 35년 장사 끝에 남은 건 굽은 손마디와 고단한 몸뿐인데, 정작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이런 아픈 속얘기를 구구절절 남기는 이유는, 이 글을 보는 젊은 세대들은 저처럼 '착한 바보'로 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큰소리 안 나게 참으며 사는 것이 결코 정답이 아닙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 입만 열면 욕설을 내뱉는 천박한 환경에서 "아이들 때문에 한 번만 더 참자"고 자신을 다독이지 마십시오. 그 참음 끝에는 보람이 아니라 지독한 후회만 남을 뿐입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는 과감히 발길을 돌리십시오. 부디 여러분은 저처럼 인생의 끝자락에서 지난날을 가여워하며 눈물짓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아끼고 사랑하며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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