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출산 휴가 아깝다며 나를 혼자 둔 남편, 그 서러웠던 출산 기록
인생은 때때로 잔인할 만큼 공평하지 못합니다. 남들은 남편의 손을 잡고 가족들의 축복 속에 새 생명을 맞이한다고들 하지만, 제게는 그 당연한 풍경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30여 년 전, 첫딸을 낳던 날도 그리고 연이어 둘째 딸을 낳던 그 기막힌 날에도 저는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며 늘 북적이는 가족들 틈에 있었지만, 정작 내 인생의 가장 무거운 고비였던 출산의 순간만큼은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그 무서운 진통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야 했습니다. 제 남편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첫딸을 낳을 때가 아마 금요일이었을 겁니다. 당시 대기업은 출산 휴가를 며칠 주곤 했는데, 남편은 그 휴가가 주말과 겹치면 며칠 손해를 본다며 만삭인 저를 병원에 혼자 두고 출근을 해버렸습니다. 토요일 오전 근무까지 있던 시절이라 그 반나절, 하루 휴가를 아끼겠다고 산통이 시작된 아내를 외면한 것입니다. 저는 차가운 병원 침대 위에서 밀려오는 공포와 싸우며 밤새 산통을 겪었고, 결국 이튿날 아침에야 홀로 첫딸을 받아냈습니다. 곁에서 손을 잡아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이 뼛속까지 시렸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3년 뒤 둘째 딸을 낳던 날은 더욱 기가 막혔습니다. 이미 첫째 때 경험이 있었기에 저는 집에서 밤새도록 짐승처럼 앓으며 고통을 견뎠습니다. 남편은 그 고통을 옆에서 다 지켜보고도 아침이 되자 매정하게 출근 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 결국 저는 시매부의 차를 빌려 타고서야 겨우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분만실에서 산통을 겪는 와중에 간호사가 의아한 듯 묻더군요. "밖에 계신 분은 누구시냐"고요. 남편이 아니라 시매부라고 대답했더니, 간호사가 혀를 차며 "참 어려운 사람과 왔다"고 합디다. 그 말이 어찌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던지요.
거짓말 같지만 모두 사실이고, 드라마 같지만 제가 직접 겪은 생지옥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대학병원에서 후두암 수술을 받으시던 그날, 저 또한 같은 하늘 아래 다른 병실에서 누구의 응원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 그 소리를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을 자상한 아버지는 수술로 인해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고 계셨고, 정작 곁에 있어야 할 남편은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배신감이 교차하던 그 폭풍 같은 순간에 제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구석을 시리게 만드는 깊은 흉터입니다.
세월이 흘러 30년 전 그날 홀로 낳았던 둘째 딸이 장성한 지금, 저는 블로그라는 세상에 그날의 서러운 기록을 꺼내 놓습니다. 35년 자영업의 파고를 넘고 신용회복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오며 제가 배운 것은, 결국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며 그 외로웠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출산 휴가 며칠에 아내를 버려두었던 이기적인 남편을 원망하기보다, 그 모진 세월을 혼자 버텨낸 제 자신이 대견해 눈물이 납니다. 62세 장사꾼 엄마의 도전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믿으며, 저는 오늘도 제 아픈 기억을 정성껏 기록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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