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야기]은빛 멸치 떼의 합창, 울진 19가구 작은 마을의 후리잡이와 아버지의 칭찬
제가 자란 고향은 19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소박한 마을이었습니다. 산 하나
없이 뒤로는 푸른 동해바다가,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진 곳이었죠. 방파제도
없이 끝없이 이어진 고운 모래사장은 우리 8남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놀이터였습니다
온 동네의 축제, '후리멸치잡이'를 아시나요?
반농반어촌이었던 우리 마을은 봄과 가을이면 바다가 주는 특별한 선물로
들썩였습니다.
바로 **'후리멸치잡이'**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후리'란 긴 그물을 바다에 둘러친
뒤 여러 사람이 양쪽에서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법입니다.
당시 마을에는 배가 딱 세 척뿐이었는데, 모두 저희 큰아버지 소유였지요.
멸치 떼가 들어오는 신호가 떨어지면 우리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서셨습니다.
아버지는 바다 위 윤슬의 움직임만 보고도 멸치 떼의 길목을 귀신같이
읽어내는 베테랑이셨고, 아버지가 지휘를 시작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마음으로 그물을 당겼습니다.
그물 끝이 백사장에 닿을 때쯤, 은빛 멸치들이 '타다타닥' 소리를 내며 모래 위로
튀어 오르던 그 장관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갓 잡아 올린 멸치는 마을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고, 커다란 가마솥에
바닷물을 길어와 푹 삶아 말려 일 년 양식으로 삼거나 장터에 내다 팔기도
했습니다.
여덟 살 '억척이'를 만든 아버지의 숭어회
저는 8남매 중 일곱째였지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일찍 철이 든
**'억척이'**였습니다. 새어머니는 몸이 약하셨기에 집안의 궂은일은 자연스럽게 제
몫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를 유독 든든해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초망으로 싱싱한 숭어를
잡아오시는 날이면 늘 저를 찾으셨죠.
"숭어회는 새엄마보다 우리 일곱째가 썰어야 제맛이 난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칼을 들고 생선을 다듬는 게 고단할 법도 했지만, 저를
믿어주시는 아버지의 그 흐뭇한 칭찬 한마디면 어깨가 으쓱해져서 신나게 회를 치곤
했습니다.
고단함 속에 피어난 삶의 근육
지금 돌이켜보면, 일찍 엄마를 여읜 딸이 일찍 철든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얼마나
짠하셨을까요. 아버지의 그 인정 어린 칭찬은 어린 제 마음속에 **'살아낼
용기'**를 심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모래사장에서 그물을 당기고 생선을 손질하며 익힌 **'삶의 근육'**이 있었기에,
훗날 35년 자영업의 모진 풍풍파 속에서도 저는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파도를 넘게 해준 소중한 유년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멸치와 숭어의 효능
함께 알면 좋은 상식: 우리 가족 건강 지켜준 멸치와 숭어
아버지가 잡아오신 은빛 멸치는 단순한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멸치는 '바다의
우유'라고 불릴 만큼 칼슘이 풍부해, 자칫 영양이 부족할 수 있었던 우리 8남매의
뼈를 튼튼하게 해주었지요. 특히 갓 잡은 멸치를 바닷물에 삶아 말리면 그 짭조름한
풍미가 일품입니다.
또한, 제가 직접 회를 쳤던 숭어는 겨울부터 봄까지가 제철인데, 단백질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 되어 기력 회복에 그만입니다. 아버지가 왜 하필 저에게
숭어회를 맡기셨는지, 이제야 그 깊은 속내를 알 것 같습니다. 제 손맛이 더해진
보양식을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으셨던 아버지의 마음이었겠지요.
다음 편에는 겨울철 농한기, 집집마다 가마니 짜는 기계 소리가 정겹던 '가마니
부업'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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