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인생이야기] 지도로는 찾을 수 없는 나의 낙원, 염전 마을의 추억

지도로는 찾을 수 없는 나의 낙원, 염전 마을의 추억

​우리 동네는 참으로 특별한 지형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뒤로는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앞에는 끝없는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었으며, 마을 양옆으로는 두 줄기 강이 포근하게 감싸 안고 흐르던 곳. 그 천혜의 자연 속에 딱 열아홉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늘 "이곳이 예전엔 다 하얀 소금이 피던 염전이었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비록 제가 자랄 땐 염전 일은 멈춘 뒤였지만, 마을 곳곳에 남은 소금기의 흔적은 우리 8남매에게 그 어떤 놀이공원보다 신비로운 놀이터가 되어주었습니다. 
땅을 파면 짭조름한 냄새가 날 것만 같던 그 시절의 흙내음이 아직도 코끝에 선합니다.

​가난했지만 순박했던 열아홉 집의 정(情)

​우리 마을은 바다와 땅을 동시에 터전 삼은 '반농반어촌'이었지만, 대부분의 이웃은 정직하게 땅을 일구는 농사에 의존해 살았습니다. 8남매나 되는 우리 집도, 다른 이웃들도 참 가난한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참으로 순박했습니다.

​내 것 네 것 없이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지내던 열아홉 가구. 비록 끼니 걱정을 해야 할 만큼 가난한 형편이었어도, 이웃끼리 감자 한 알, 옥수수 한 자루라도 생기면 꼭 나눠 먹었습니다. 
척박한 땅 위에서도 서로의 시린 손을 맞잡아주며 보듬으며 살았던 그 시절의 정은, 35년 동안 장사를 하며 수많은 손님을 치러온 지금의 저에게도 가장 소중한 삶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언니들이 떠난 자리를 채워준 동네 친구들

​8남매 중 일곱째였던 제게 집안은 늘 북적거리는 시장통 같았습니다. 
집안 어디를 가도 사람 온기가 가득했죠. 하지만 제가 철이 들 무렵, 나이 차가 많던 큰언니들은 하나둘 시집을 가고 든든했던 오빠들도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나갔습니다.

 집안의 빈자리가 커질수록 제 마음 한구석도 쓸쓸함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허전함을 채워준 건 대문 밖 동네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만나면 늘 손에 낫과 갈퀴를 들고 자연으로 향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놀이 기구가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산과 들, 바다가 모두 우리의 장난감이었고 일터였습니다.

​소 먹이고 '갈비' 긁던 그 시절의 우정

​우리에겐 일이 곧 놀이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던져두고 소를 끌고 들판으로 나가 싱싱한 꼴을 베었습니다. 
찬 바람 부는 겨울이면 산에 올라 마른 솔잎인 **'갈비'**를 긁어 모았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갈비'라고 하면 먹는 고기인 줄 알겠지만, 저희 세대에게 갈비는 추운 겨울 방구석을 데워주던 귀한 땔감이었습니다.
​"순이야, 소 먹이러 가자!" 담장 너머로 들려오던 친구의 목소리에 낫 한 자루 들고 뛰어나가던 그 시절. 손끝은 시리고 발가락은 얼어 감각이 없었어도, 친구들과 깔깔대며 갈비를 긁어 모으다 보면 추운 줄도 몰랐습니다.
 우리 동네 염전 마을은 산이 없어서 지금의 엑스포공원 근처 솔밭까지 원정을 가기도 했죠. 긁어모은 갈비를 가져오기 좋게 사각으로 꽉꽉 뭉치는 일은 마치 커다란 선물을 포장하는 것처럼 재미있었습니다.

​땔감 한 뭉치에 담긴 부모님을 향한 마음

​소들이 한가로이 풀 뜯는 소리와 우리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지던 그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산에서 긁어온 갈비 한 뭉치를 지게에 지고 돌아올 때의 그 뿌듯함이란! 그것으로 불을 지펴 따뜻해진 방에서 아버지가 편히 쉬실 생각을 하면 어린 마음에도 참 기뻤습니다.

​35년 동안 식당과 홈패션 사업을 하며 바쁘게 달려온 지금, 문득문득 그때의 그 갈비 냄새와 솔바람 소리가 그립습니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그 시절, 우리는 자연 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우정을 쌓았습니다. 
여러분도 어릴 적 부모님 일손을 돕던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혹은 여러분만의 비밀스러운 '낙원' 같은 장소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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