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인생이야기] 딸 많은 집 일곱째 딸, 아버지의 '욕 한마디 없는' 밥상머리 교육이 준 선물

 딸 많은 집 일곱째 딸, 아버지의 '욕 한마디 없는' 밥상머리 교육이 준 선물

​어제 정월대보름 환한 달빛을 보며 아버지 생각에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대보름 달빛만큼이나 인자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유독 간절하게 떠오르는 밤입니다. 
살아계셨다면 올해로 102세, 소띠이신 우리 아버지. 73세라는 연세에 조금 일찍 곁을 떠나셨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가 남겨주신 삶의 가르침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풍파 속에서도 잃지 않은 성품의 품격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탄광 징용의 어둠 속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으셨고, 뒤이어 터진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기적처럼 돌아오신 분입니다. 
그 모진 세월과 생사의 고비를 온몸으로 겪으셨으니 얼마나 마음속에 울화와 고단함이 많으셨을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집에서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매를 드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딸이 많은 우리 집에서, 엄마 없이 자라는 딸들이 기죽을까 봐 혹은 어디 가서 손가락질받을까 봐 아버지는 평생 우리에게 욕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7살에 엄마를 여의고 적적해진 집안에서, 우리 세 자매를 늘 칭찬해 주시고 인자한 미소로 감싸주셨던 아버지는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우주였습니다.

​지겹도록 들었던 잔소리 속에 담긴 '지독한 사랑'

​그런 자상한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만큼은 조용히, 하지만 지겹도록 반복해서 가르치신 '예절'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어른들 길 가시는데 그 앞을 가로질러 가지 마라. 옆으로 비켜 서서 기다렸다가 인사드리고 조용히 다녀라."
"어디 가서든 남의 눈에 어긋나는 짓 하지 말고, 말 한마디도 정갈하게 해라."

​어린 시절에는 그 말씀이 왜 그리도 듣기 싫은 잔소리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예절을 강조하셨던 건, 엄마 없는 자식들이라고 남들에게 얕보이지 않게 하시려던 아버지만의 '지독한 사랑'이었다는 것을요.
​**"내가 내 자식을 귀하게 대접해야 남들도 내 자식을 업신여기지 못한다"**던 그 말씀.
 아버지는 딸 많은 집 자식들이 욕 듣지 않게 하시려고, 스스로 화를 누르며 가장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를 귀하게 대접해 주셨던 것입니다.

​가정교육의 힘으로 버틴 35년 자영업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넘으면서도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으셨던 나의 아버지. 그 시절 아버지가 입혀주신 '예의'라는 갑옷 덕분에, 저는 훗날 35년 자영업의 모진 풍파를 다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손님을 대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 아버지의 가르침은 제 몸에 배어 저를 지켜주는 가장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따라 밥상 맞은편에서 따뜻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시며 "사람은 예의가 바라야 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그 손길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아버지가 지겹도록 들려주신 그 잔소리가, 지금의 저를 만든 가장 큰 축복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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