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많은 집 일곱째 딸, 아버지의 '욕 한마디 없는' 밥상머리 교육이 준 선물
어제 정월대보름 환한 달빛을 보며 아버지 생각에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대보름 달빛만큼이나 인자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유독 간절하게 떠오르는
밤입니다.
살아계셨다면 올해로 102세, 소띠이신 우리 아버지. 73세라는 연세에 조금 일찍
곁을 떠나셨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가 남겨주신 삶의 가르침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풍파 속에서도 잃지 않은 성품의 품격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탄광 징용의 어둠 속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으셨고, 뒤이어
터진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기적처럼 돌아오신 분입니다.
그 모진 세월과 생사의 고비를 온몸으로 겪으셨으니 얼마나 마음속에 울화와
고단함이 많으셨을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집에서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매를 드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딸이 많은 우리 집에서, 엄마 없이 자라는 딸들이 기죽을까 봐 혹은 어디 가서
손가락질받을까 봐 아버지는 평생 우리에게 욕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7살에 엄마를 여의고 적적해진 집안에서, 우리 세 자매를 늘 칭찬해 주시고 인자한
미소로 감싸주셨던 아버지는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우주였습니다.
지겹도록 들었던 잔소리 속에 담긴 '지독한 사랑'
그런 자상한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만큼은 조용히, 하지만 지겹도록 반복해서
가르치신 '예절'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어른들 길 가시는데 그 앞을 가로질러 가지 마라. 옆으로 비켜 서서
기다렸다가 인사드리고 조용히 다녀라."
"어디 가서든 남의 눈에 어긋나는 짓 하지 말고, 말 한마디도 정갈하게 해라."
어린 시절에는 그 말씀이 왜 그리도 듣기 싫은 잔소리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예절을 강조하셨던 건, 엄마 없는 자식들이라고 남들에게 얕보이지
않게 하시려던 아버지만의 '지독한 사랑'이었다는 것을요.
**"내가 내 자식을 귀하게 대접해야 남들도 내 자식을 업신여기지 못한다"**던 그
말씀.
아버지는 딸 많은 집 자식들이 욕 듣지 않게 하시려고, 스스로 화를 누르며
가장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를 귀하게 대접해 주셨던 것입니다.
가정교육의 힘으로 버틴 35년 자영업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넘으면서도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으셨던 나의 아버지.
그 시절 아버지가 입혀주신 '예의'라는 갑옷 덕분에, 저는 훗날 35년 자영업의 모진
풍파를 다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손님을 대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 아버지의 가르침은 제 몸에 배어 저를 지켜주는
가장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따라 밥상 맞은편에서 따뜻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시며 "사람은 예의가 바라야
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그 손길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아버지가
지겹도록 들려주신 그 잔소리가, 지금의 저를 만든 가장 큰 축복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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