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결혼과삶] 35년 차 아내가 고백하는 진심,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 안 합니다"
8남매 중 일곱째 딸. 엄마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7살 어린 나이에 저는 엄마를 여의었습니다. 새엄마 밑에서 눈치껏 자라며 제가 배운 것은 '내 편 하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었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보다 엄마의 온기가 더 그리웠던 그 시절, 저에게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지켜줄 유일한 울타리이자, 일찍 잃어버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안식처를 찾는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하지만 3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순진했던 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울타리가 네 온몸을 옥죄고, 네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어야 유지되는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단다"라고요.
엄마 없는 설움이 만든 성급한 울타리, 그 뒤에 가려진 혹독한 대가
그때의 저는 결혼이라는 문을 열면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지, 그 뒤에 기다리는 혹독한 시집살이와 가장의 무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 선택한 결혼이었는데, 정작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엄마의 온기가 아니라 시어머니의 서슬 퍼런 눈치와 끝없는 가사 노동, 그리고 장사의 고단함이었습니다. 7살 어린 소녀가 꿈꿨던 안식처는 온데간데없고, 저는 어느덧 한 집안의 운명을 짊어진 무거운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어리광 한번 부려보지 못한 채, 저는 그렇게 어른이 되기도 전에 '아내'와 '며느리'라는 무거운 이름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졌던 불안함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애착의 결핍'을 채우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뛰어든 결혼 생활은 제 자아를 찾기도 전에 타인을 위한 삶으로 저를 몰아넣었습니다.
35년 세월, 내 이름 석 자 대신 남겨진 거친 손마디와 식당의 눈물
결혼은 둘이 만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쟁터였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순간, 저는 내 이름 석 자를 잃어버렸습니다. 시어머니의 며느리로, 시누이들의 올케로, 그리고 곧이어 태어난 아이들의 엄마로만 불리며 35년을 살았습니다. 마음의 병을 앓는 남편을 다독이며 가게를 지켜야 했고, 시어머니 밑에서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살았습니다.
15년은 이불 장사로, 20년은 식당 사장으로 살며 제 손마디는 굵어지고 거칠어졌지만, 정작 제 마음의 상처는 돌볼 틈조차 없었습니다. "사장님 소리 들으며 돈 벌면 됐지"라고 남들은 쉽게 말하지만, 매일 아침 인건비를 단돈 만 원이라도 아끼려 새벽같이 일어나 직접 칼을 잡고 고기를 썰던 그 고단함을 누가 알까요. 고기를 썰며 떨어지는 것이 육즙인지 제 피눈물인지 모를 세월을 20년이나 버텼습니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무너져 내려도 "엄마는 괜찮다"는 말로 자식들을 안심시키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35년 장사 인생은 저에게 경제적 자립을 주었을지 모르나, 제 청춘과 바꾼 가혹한 거래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누구의 무엇이 아닌 그냥 '나'로 살고 싶은 중년의 선언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35년 동안 앞치마 한 번 편히 풀어보지 못한 채, 가족이라는 이름의 짐을 짊어지고 달려온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만약 지금 저에게 다시 35년 전 예식장에 서 있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그 화려한 드레스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제 갈 길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며느리도 아닌 그냥 '나'로서 자유롭게 세상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해 지는 노을을 아무런 걱정 없이 바라보고, 누구의 끼니도 걱정하지 않은 채 오로지 나를 위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을 뿐입니다. 희생이 미덕인 줄 알고 살았던 지난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는 제 자신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고자 합니다.
오늘 저는 그 길고 긴 전쟁 같은 결혼 생활의 첫 페이지를 블로그에 넘깁니다.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 짧은 한마디 뒤에 숨겨진, 차마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제 하나씩 꺼내 보려 합니다. 저처럼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 하나쯤 품고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아내분과 어머니분들, 제 투박하고 긴 기록이 여러분께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되길 바랍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이제 누구의 며느리도, 엄마도 아닌 저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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