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8일 수요일

[인생 이야기] 7살의 눈물을 웃음으로 바꾼 1남 7녀, 우리들의 한복 나들이

[인생 이야기]7살의 눈물을 웃음으로 바꾼 1남 7녀, 우리들의 한복 나들이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사진 한 장과 함께, 저희 8남매의 애틋한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얼마 전 조카의 결혼식을 맞아 참으로 오랜만에 1남 7녀, 우리 8남매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란히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니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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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결혼식 날,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1남 7녀의 모습입니다. 고운 한복만큼이나 빛나는 우리 형제들의 우애가 묻어나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1남 7녀, 한복으로 물들인 축복의 자리

​조카의 결혼식 날, 저희 일곱 자매와 유일한 아들인 우리 형제는 각자 고운 빛깔의 한복을 맞춰 입었습니다. 
흔치 않은 1남 7녀라는 대가족이 한복을 입고 서 있으니, 예식장에 오신 많은 분이 "어쩜 이렇게 다복하고 화목하냐"며 부러운 시선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시선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긴 세월을 함께 버텨온 우리 형제들이 너무나 대견해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일곱 살의 이별, 그리고 새엄마와 시작된 8남매의 운명

​우리에겐 남들에게 쉽게 꺼내지 못한 아픈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겨우 일곱 살 되던 해, 친엄마는 저희 8남매를 두고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엄마의 온기가 무엇인지도 채 알기 전, 그 커다란 빈자리를 채우러 오신 새엄마와 함께 저희 8남매의 복작거리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새엄마 밑에서 자라며 때로는 서럽고, 때로는 밤잠 설쳐가며 눈물짓던 날도 참 많았습니다. 8명이라는 많은 입이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시절,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 험난했던 고비마다 우리가 손을 놓았다면 지금의 이 웃음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 우리 참 잘 컸죠?"

​사진 속 우리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마음속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불러봅니다. 
그 어린 날, 엄마 손을 놓지 않으려 울며 매달리던 울보들이 이제는 다들 누군가의 든든한 부모가 되고, 고모가 되고, 이모가 되었습니다.

​세월의 풍파에 머리엔 어느덧 하얀 서리가 내려앉고 얼굴엔 주름이 깊어졌지만, 형제들 곁에 있으면 우리는 다시 그 옛날 코흘리개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조카의 결혼을 축하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를 보며 혼잣말로 되뇌어 봅니다. "엄마, 보고 계시죠? 우리 이만하면 정말 잘 컸죠?"

​엄마가 남겨주신 가장 위대한 유산, '형제'

​살다 보면 혼자서는 절대 넘지 못할 높은 산들이 앞을 가로막곤 합니다. 
저 역시 35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며 쓰러지고 싶을 때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우리 여덟 형제였습니다.
 혼자 짊어졌다면 꺾였을 무게를 여덟 명이서 나누어 짊어지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친엄마가 저희에게 남겨주신 가장 큰 재산은 금전도 명예도 아닌, 바로 이 '형제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나의 편, 비바람이 불어도 함께 비를 맞아줄 우리 1남 7녀. 우리가 함께라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세월도 두렵지 않습니다.

​마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시련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을 우리 8남매를 보며 다시금 느낍니다. 여러분도 오늘 곁에 있는 형제, 자매에게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따뜻한 메시지 하나 보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작은 진심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 1남 7녀 형제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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