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남매 중 일곱째 딸, 아버지의 장날 데이트와 고래고기
여덟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저의 유년 시절은 북적임 뒤에 찾아온 묘한 쓸쓸함이 함께였습니다.
위로 언니들은 하나둘 시집을 가고, 든든했던 오빠마저 직장을 찾아 타지로
떠나버렸지요.
결국 넓은 집에는 언니 한 명과 저, 그리고 막내 동생까지 우리 세 자매만이 남아
아버지를 모시고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빈자리가 컸던 그 시절, 아버지는 유독 일곱째인 저를 끔찍이 아끼셨습니다. 장날만 되면 아버지는 대문 밖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셨지요.
"야야, 장에 가자! 니 안 가면 아부지 장에 안 간다!"
집에 남은 세 자매 중에서도 유독 저를 앞세우고 장터로 향하시던 아버지. 자다가도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아버지의 굵고 따뜻한 손을 잡으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투박한 손마디의 감촉이 어머니 없는 빈자리를 채워준 제 유년 시절의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고래고기 한 점과 아버지의 막걸리 한 사발
시장에 들어서면 코끝을 자극하던 그 특유의 고래고기 삶는 냄새가 지금도 선합니다. 아버지는 단골 가게 평상에 저를 앉히시고는 아주머니에게 쌈짓돈을 꺼내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딸내미 제일 맛있는 부위로 좀 썰어주소. 나는 막걸리 한 사발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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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참 귀해진 고래고기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막걸리 안주이자, 저에게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확인시켜 주던 특별한 음식이었습니다. |
뽀얀 막걸리 한 잔에 고단한 농사일과 자식 여럿 키우는 무게를 잠시
내려놓으시는 듯 보였지요. 정작 고기에는 젓가락질도 몇 번 안 하시고, 제가
오물오물 씹는 모습만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허허 웃으시던 그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의 소맷자락에 담긴 깊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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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남매 중 일곱째인 저를 유독 아껴주셨던 아버지의 생전
모습입니다. 저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 크고 든든한
버팀목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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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남겨진 언니와 동생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몽유병으로 밤마다 밖을 헤매며 기력이 약해진 일곱째 딸을 향한 아버지의
안쓰러운 마음을 알기에,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아버지를 독차지하며 행복을
누렸습니다.
고기를 다 먹고 나면 기름기가 묻은 제 입술을 당신의 투박한 소맷자락으로 슥
닦아주시던 그 온기. 이제는 전국 어디 유명한 장터에 가도 그때 그 맛이 나지
않습니다.
고래고기가 귀해진 탓도 있겠지만, 저를 가장 귀하게 여겨주시던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과 막걸리 사발 너머의 인자한 미소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오늘따라 아버지가 잡아주시던 그 굵고 따뜻한 손마디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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