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35년 장사 인생에 처음 허락된 쉼표, 제주 아르떼뮤지엄 티바에서 마주한 눈물겨운 꽃차
주민등록상 제 생일인 오늘, 2년 전 남편의 환갑을 맞아 온 가족이 다녀왔던 제주도 여행의 사진을 다시 꺼내 봅니다. 사실 저와 남편에게 이 여행은 남들 다 가는 흔한 관광이 아니었습니다. 15년 침구 사업과 20년 요식업, 도합 3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부부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생애 첫 휴식'**이었기 때문입니다.
1. 단골손님 발길 돌릴까 무서워 여행 한 번 못 간 35년의 세월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참으로 무거운 단어입니다. 15년 동안 홈패션 침구 사업을 할 때는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느라 발바닥이 부르트기 일쑤였고, 이후 2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는 1년 365일 시뻘건 가스불 앞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 다 쉬는 명절이나 휴가철이 저희 같은 자영업자들에게는 가장 바쁜 대목이었기에, 우리 가족의 달력에는 '휴가'라는 글자가 적힐 틈이 없었습니다.
"가게 문 닫으면 단골손님들 헛걸음할 텐데", "하루라도 쉬면 내일 장사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여행은커녕 가까운 나들이 한 번 마음 편히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 딸로 태어나 일찍 엄마를 여의고 고생하며 자란 탓인지, 저에게는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익숙한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저는 서로의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조차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 없이, 오로지 자식들 키우고 먹고사는 일에만 온 청춘을 다 바쳤습니다.
2. 남편의 환갑에야 비로소 마주한 제주도, 그리고 아르떼뮤지엄 티바
어느덧 35년이 흘러 남편이 환갑을 맞이했을 때야, 저희는 처음으로 큰맘 먹고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주도 바다는 제 눈물만큼이나 푸르고 깊었습니다. 그 여행 중 방문했던 아르떼뮤지엄 티바(Tea Bar)는 제 인생에서 가장 환상적이고도 뭉클했던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주문한 차가 담긴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순간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찻잔을 중심으로 형형색색의 예쁜 꽃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활짝 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디지털로 구현된 영상이었지만, 35년 평생 식당 주방에서 김치 냄새, 고기 냄새만 맡으며 살아온 저에게는 그 꽃들이 세상 그 어떤 꽃보다 향기롭고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찻잔 위에서 피어나던 꽃들은 마치 저에게 **"그동안 참 장하게 잘 버텼다, 이제는 너도 이 꽃처럼 좀 피어나도 된다"**라고 말하며 제 거칠어진 손을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환상적인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우리 가족의 앞날도 이제는 이 찻잔 속 꽃처럼 고생 끝에 활짝 피어나길 간절히 소망해 보았습니다.
| 35년 장사하느라 처음 간 제주 여행에서 본 꽃차 |
3. 가족의 웃음소리가 꽃처럼 피어난 35년 만의 보상
침구 사업 15년, 요식업 20년... 거친 세상을 버텨오느라 남편과 이런 여유를 누려본 게 참으로 오랜만 아니, 사실상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만큼은 주문 들어온 음식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고, 손님들의 요구에 허리 굽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아내이자 엄마로서, 남편과 마주 앉아 꽃차 한 잔을 나누는 그 평범한 일이 35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가장 큰 호사였습니다.
지금은 다시 장사 현장으로 돌아와 앞치마를 두르고 있지만, 2년 전 그날 마셨던 따뜻한 차의 향기와 가족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여전히 제 가슴 한구석에 선명한 훈장처럼 남아 있습니다. 삶이 고단하고 장사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저는 제주도 찻잔 위에 피어나던 그 찬란한 꽃들을 떠올립니다.
비록 진짜 제 생일 날짜는 몰라 호적상 생일로 오늘을 보내고 있지만, 제주도에서 마주한 그 꽃차처럼 제 남은 인생도 늘 아름답게 피어나길 빌어봅니다. 35년이라는 긴 터널을 묵묵히 함께 걸어와 준 남편에게, 그리고 장한 우리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오늘 제 이야기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자영업자분께 따뜻한 꽃차 한 잔 같은 위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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