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인생이야기] 장구 치던 아버지와 지신밟기의 추억, 정월대보름의 그 신명 나던 가락

[인생이야기] 장구 치던 아버지와 지신밟기의 추억, 정월대보름의 그 신명 나던 가락

안녕하세요. 8남매 중 일곱째, 오늘도 인생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일곱째 딸입니다. 어제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은 제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가장 시끌벅적하고 활기찼던 **'정월대보름'**과 '지신밟기'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먼 옛날의 기억이지만, 제 눈앞에는 장구 치시던 아버지의 땀방울이 지금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1. 8남매 식구들의 소란스러운 오곡밥 아침

요즘은 대보름이라고 해도 조용히 오곡밥 해 먹고 지나가는 정도지만, 제가 어릴 적 8남매와 함께 살던 고향 마을의 대보름은 명절만큼이나 큰 축제였습니다. 아침 일찍 눈을 뜨면 어머니가 정성껏 지으신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습니다.

식구 많은 8남매 집안이라 오곡밥 양도 어마어마한 가마솥 가득이었고, 우리는 부럼을 깨물며 "일 년 내내 무사태평하게 해주세요"라고 소리 높여 빌곤 했습니다. "내 더위 사 가라!"며 서로 더위를 팔고, 오곡밥을 누가 더 많이 먹나 아웅다웅하던 그 소란함... 7살 어린 저에게 그 소란함은 가난을 잊게 하는 따스한 온기였습니다.

"비록 사진은 없지만, 그때 머리 맞대고 밥을 먹던 형제들의 얼굴과 고소한 나물 냄새는 제 가슴 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2. 풍물패 대장이셨던 우리 아버지, 장구 소리에 온 마을이 들썩이고

하지만 대보름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마을 전체를 뒤흔들던 **'지신밟기'**였습니다. 저 멀리서 꽹과리, 징, 장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우리 8남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특히 저희 집 마당이 유독 떠들썩했던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아버지가 그 풍물패의 대장이셨거든요!

흰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차려입으시고 장구를 어깨에 메신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참 일품이었습니다. 장구채를 휘두르며 신명 나게 가락을 타실 때면 온 동네 사람들이 넋을 잃고 구경하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뽑아내시던 타령 한 자락에 마당의 흙먼지가 일어나고, 동네 사람들의 어깨춤이 덩실덩실 절로 나던 그 흥겨운 풍경...

요즘도 가끔 TV에서 장사익 님이 노래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그 깊은 목소리와 애절한 가락에서 장구 치시던 저희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여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합니다. 7살 어린 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온 세상을 들썩이게 하던 최고의 예술가였습니다.

3. '다라이' 가득 담아온 이웃의 정, 보름밥 비빔밥의 추억

대보름의 축제는 밤이 되어도 끝날 줄 몰랐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우리 동네 아이들은 커다란 다라이(양대야)를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돌아다녔습니다. "보름밥 좀 주세요!" 외치며 얻어온 찰진 오곡밥과 갖가지 나물들을 다라이에 한데 넣고 쓱쓱 비벼 먹던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숟가락 하나씩 들고 달빛 아래 둘러앉아 밥을 나눠 먹으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밤새 깔깔거리고 놀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지신밟기와 나눠 먹던 밥 한 그릇은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던 따뜻한 품앗이 마음이었습니다.

살면서 35년 자영업의 길에서 마주한 수많은 고비와 시련 속에서도 제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때 아버지가 마당을 꽝꽝 밟아주던 그 힘찬 장구 소리와 친구들과 나누어 먹은 든든한 밥 한 끼의 기운이 제 몸속에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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