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향 집터, 보따리 하나 들고 온 새엄마와 아버지의 지극정성
산 하나 없이 평평한 들판 끝, 동해 바다가 시작되는 그 길목에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지금은 공원이 조성되어 옛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그곳은 우리 여덟 남매와 자상하셨던 아버지, 그리고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우리 집에 들어온 새엄마의 사연이 얽혀 있는 곳입니다.
소박맞고 들어온 여인과 아버지의 아픈 다짐
우리 새엄마는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모질게 소박을 맞고 쫓겨나 갈 곳 없는 처지였습니다.그런 새엄마를 아버지가 거두어 주셨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친엄마를 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깊은 상처를 안고 사셨던 분입니다.
7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우리 자식들도 가여웠지만, 아버지는 당신 곁의 소중한 사람이 또다시 병으로 떠나가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하셨습니다.
"또 죽을까 봐 겁나서..." 산과 들을 누빈 아버지의 약초
새엄마는 늘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병원을 시장 구경 가듯 하셨고, 사춘기였던 우리 세 자매는 그런 새엄마의 약봉지가 참으로 야속하고 서러웠습니다.아버지가 고생해서 번 돈이 보약으로 들어가는 게 못마땅해 원망도 참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아버지의 속내를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새엄마한테 정말 지극정성이셨습니다. 몸에 좋다는 소문만 들리면 산으로 들로 다니며 직접 약초를 캐다 나르셨지요.
아버지는 당신의 아내를 또다시 병으로 잃을까 봐, 그게 무섭고 겁이 나서 그렇게 약초를 캐 오셨던 겁니다.
새엄마의 유별난 건강 관리 뒤에는, 아내를 지키고자 했던 아버지의 눈물겨운 정성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자식 없는 여자의 불안함과 아버지의 큰 사랑
새엄마가 약봉지에 집착했던 것도 어쩌면 자식 없는 서러움 속에 늙어서 버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겠지요.아버지는 그 불안함까지 다 안아주셨던 겁니다.
우리 딸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새엄마에게는 안쓰러운 마음을 품고 그 긴 세월을 버티셨을 아버지. 두 마음 사이에서 침묵하며 약초를 캐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공원이 된 집터에 남은 깨달음
이제 우리 집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 들판 끝자락을 생각하면 이제는 서러움보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먼저 떠오릅니다.사춘기 소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그 절박했던 사랑을, 이제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시 저처럼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부모님의 깊은 속마음을 깨닫고 눈물지으신 분이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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