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볏짚 향 가득한 겨울, 지붕을 잇고 가마니를 엮던 아버지의 손
가을 추수가 끝나면 시골의 겨울은 집집마다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인 저의 기억 속 겨울은,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이 아니라 온 동네가 하나 되어 움직이던 뜨겁고 활기찬 풍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1970년대, 가난했지만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1. 서로의 비바람을 막아주던 '지붕 잇기 품앗이'
추수가 끝나면 마을의 가장 큰 숙제는 우리 집 지붕에 새 옷을 입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초가집 지붕 잇기는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거대한 작업이었지요.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며 **'품앗이'**를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집, 내일은 앞집... 어른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삭은 이엉을 걷어내고 노란 새 이엉을 얹을 때면, 마을은 온통 고소한 볏짚 냄새로 가득 찼습니다.
마당에서는 아낙들이 정성껏 준비한 새참을 나누며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올해 지붕도 든든하게 올라갔네!" 하며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던 풍경. 남의 집 일을 내 집 일처럼 돌봐주며 서로가 서로의 비바람을 막아주던 그 따뜻한 공동체 의식이 지금의 각박한 세상에서는 참으로 그립습니다.
2. 손바닥이 발갛게 익어가는 '새끼 꼬기'의 인내
지붕을 올리고 남은 볏짚들은 버릴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그다음 순서는 가마니를 짤 바탕이 되는 새끼줄을 꼬는 일이었습니다. 거친 볏짚을 한 움큼 집어 손바닥 사이에 넣고 '슥슥' 비비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바닥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따끔거렸습니다.
기계로 돌리는 작업도 있었지만, 세밀한 부분은 여전히 투박한 손바닥의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어린 저는 그 따끔거림이 싫어 투정 부리기도 했지만, 그 고통을 견디며 한 줄 한 줄 단단하게 꼰 줄이 있어야만 무거운 곡식을 든든히 버티는 가마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35년 장사 인생을 버텨온 제 인내심도 어쩌면 그때 그 발갛게 달아오른 손바닥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붕을 잇고 남은 볏짚으로 가마니를 짜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단단한 새끼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일일이 손바닥으로 비벼 꼬느라 손바닥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진물이 나기도 했지만, 우리 집에는 이 귀한 새끼 꼬는 기계가 있었습니다. 기계가 돌아가며 볏짚을 빨아들여 매끈하고 탄탄한 새끼줄을 뽑아낼 때면, 어린 마음에도 참 신기하고 든든했습니다. 이 기계 덕분에 우리 아버지는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많은 새끼줄을 준비하실 수 있었지요. 35년 장사 인생을 돌아보니, 이 기계처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줄을 뽑아내던 그 성실함이 지금의 저를 만든 뿌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
3. 집안을 울리던 가마니 기계와 아버지의 부지런함
새끼줄이 충분히 준비되면 드디어 거대한 가마니 기계가 마루에 자리를 잡습니다. 7살 꼬마의 눈에 그 기계는 집안을 꽉 채울 만큼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바디를 '덜컹덜컹' 치실 때마다 온 집안에 진동이 울려 퍼졌고, 그 일정한 리듬에 맞춰 가마니가 한 줄씩 촘촘하게 엮여 나갔습니다.
반농반어촌이었던 우리 마을에서 가마니는 단순한 자급자족을 넘어 소중한 부업거리였습니다. 부지런하셨던 아버지는 겨울내내 쉬지 않고 가마니를 짜서 장터에 내다 파셨습니다. 식구 많은 8남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찬 바람 부는 마루에서 밤새 가마니를 짜던 아버지의 뒷모습...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아버지가 짜 올린 그 가마니에는 우리 가족의 겨울을 지켜준 책임감과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4. 인생이라는 지붕을 함께 이어가는 품앗이
인생도 어린 시절의 품앗이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손을 보태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년 침구 사업과 20년 요식업을 거치며 저 역시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고, 이제는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차례라고 믿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가 서로의 지붕을 이어주었듯, 저 또한 이 블로그에 제 삶의 아픔과 35년의 노하우를 나누며 누군가의 마음 지붕을 잇는 '품앗이꾼'이 되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의 제 처지가 고단한 겨울 같을지라도,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다시 정성껏 인생의 가마니를 엮어보려 합니다. 제 이야기가 1970년대를 기억하는 분들께는 따뜻한 향수가, 젊은 세대에게는 끈기 있는 삶의 지혜가 되길 소망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