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지도가 바뀌었지만, 제 머릿속에는 여전히 보석처럼 박혀 있는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참으로 귀한 곳에 있었습니다. 뒤로는 푸른 동해 바다가 넘실거리고, 양옆으로는 남대천과 왕피천이라는 두 물줄기가 휘감아 흐르던 곳이었지요.
물길이 만나 바다로 향하는 그 길목에 우리 19가구의 삶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 때의 일로 기억합니다.
추수가 막 끝나 텅 빈 들판에 겨울 초입의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고,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고모님 댁에 심부름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읍내에서 버스를 내려 마을까지 들어가는 길은 유난히도 멀고 캄캄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 동네는 해가 지면 그야말로 암흑천지였습니다.
전기가 들어오기전 집집마다 해가지면 호롱불을 준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들판을 가로질러 가려면 무섭기도 하고 발밑도 조심스러웠지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읍내에서 내려 저 멀리 들판 끝, 우리 마을이 있는 곳을 바라본 순간 저는 그만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아... 세상에 저게 뭐지?"
어제까지만 해도 칠흑같이 어두웠던 마을이었는데, 저 멀리 바닷가 마을 집집마다 환한 보석을 박아놓은 듯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역사적인 날이었던 것입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번지는 그 전등불의 환한 빛은, 어린 제 눈에 너무나도 신비롭고, 경이로웠습니다.
그 불빛은 단순히 전기가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8남매 형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 우리 집, 따뜻한 온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안도의 신호였습니다.
비에 젖어 덜덜 떨리던 몸도 잊은 채, 저는 그 환한 불빛을 향해 한참을 넋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와 ! 세상에 저게뭐지 ! 전등불이 켜진 집안 풍경은 어떨까, 언니 오빠들은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까 상상하며 빗속을 달려 집으로 향하던 그 설렘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전기가 들어오고 그후의 재밌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다음에는 동네 유일하게 TV가 있던 집
저녁이되면 드라마 보려고 언니들과 동네친구들이 모여서 마당에 멍석피고 둘러앉아 숨죽이고 티브보던 에피소드들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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