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한 달을 기다려야 맛보는 울진의 보물, 삭힌 감자떡의 진한 추억
안녕하세요. 35년째 자영업의 길을 걷고 있는 베테랑 장사꾼입니다. 오늘은 제 고향 울진에서 어릴 적 먹던, 요즘 분들은 잘 모르는 '진짜 삭힌 감자떡'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요즘 시중에서 파는 투명하고 쫄깃한 감자떡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과 정성이 빚어낸 눈물겨운 음식이지요.
1. 소금기 머금은 모래밭이 키워낸 울진 감자의 자부심
제 고향 울진, 우리 집 근처는 옛날부터 소금을 만들던 염전 밭이 많았습니다. 땅에 모래가 많이 섞여 있어서 그런지, 거기서 자란 감자는 유독 씨알이 굵고 맛이 좋기로 유명했지요. 감자 농사가 끝나고 고구마도 심어봤지만, 역시 그 땅에는 감자가 최고였습니다.
거친 바닷바람과 모래밭의 척박함을 이겨내고 자란 그 포슬포슬한 감자는 우리 8남매의 가장 든든한 양식이 되어주었습니다. 지금도 시장에서 감자를 볼 때면, 그 시절 울진 모래밭에서 갓 캐낸 흙 묻은 감자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스칩니다.
2. 지독한 냄새를 견뎌야 얻는 백설 같은 '삭힌 녹말 가루'
감자떡을 만드는 과정은 그야말로 인내와 고난의 연속입니다. 요즘처럼 기계로 뚝딱 만드는 게 아닙니다.
삭히기: 감자를 캐서 씨알이 잘은 것들을 골라 도랑가 커다란 단지에 담습니다. 그리고 20일에서 한 달 정도를 푹 썩힙니다.
으깨기와 거르기: 적당히 썩으면 발로 밟아 으깨는데, 이때 나는 냄새가 정말 지독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껍질을 걸러내고 순수한 녹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주일간의 정성: 가라앉은 녹말을 매일 새 물로 갈아주며, 하루에 적어도 5~6번, 많으면 10번 정도를 일주일 내내 깨끗이 씻어냅니다. 지독했던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말리기: 냄새가 사라지면 고운 채에 받쳐 명주보자기에 올리고, 햇볕에 며칠을 바짝 말립니다. 새하얀 녹말가루를 말리며 덩어리진 것을 부시고 있노라면,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는데 그 감촉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손끝에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3. 세 개의 가마솥과 양대콩 소가 빚어낸 고향의 맛
그렇게 힘들게 만든 가루를 뜨거운 물에 익반죽해서 손으로 조물조물 빚습니다. 그 안에는 설탕물에 절인 양대콩을 소로 듬뿍 넣어 먹었지요. 여름만 되면 도랑가에는 집집마다 감자 삭히는 단지가 3~4개씩 줄을 지어 있었습니다. 동네 전체에 냄새는 좀 났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은 감자가루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우리 8남매의 가장 든든한 별미였습니다.
우리 집 부엌에는 가마솥이 세 개나 나란히 걸려 있었어요. 제일 큰 것은 소 죽 끓이는 용도였고, 중간 솥은 감자떡을 찌거나 국을 끓였으며, 제일 작은 솥은 밥을 지었지요. 깔끔하셨던 새엄마 덕분에 가마솥은 언제나 반들반들 윤이 났습니다. 소나무 장작불로 달궈진 중간 가마솥에 볏짚을 깔고 쪄낸 삭힌 감자떡은 요즘 것들과 달리 색이 진하고 식감이 묵직했습니다. 그 구수하고 깊은 맛은 한 달의 기다림을 보상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4. 정성이 빚어낸 인생의 맛
편하게 사 먹는 요즘 음식도 좋지만, 가끔은 한 달을 기다려 얻은 그 진한 감자떡 맛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8남매를 위해 그 지독한 냄새와 고된 과정을 묵묵히 견디셨던 어른들의 정성이 이제야 제 자영업 35년 인생의 밑거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지독한 냄새(고난)를 견디고 수없이 씻어내는(노력)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저 삭힌 감자떡을 보며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쓴맛 뒤에 찾아온 달콤한 추억의 음식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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