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남매 중 일곱째인 나는 위로 언니들이 시집을 가고 나자, 다섯째 언니와 막내 동생과 함께 살았다.
언니는 얼굴이 예쁘고 몸이 여리여리해서 항상 예쁨을 받았고, 막내는 말 그대로 막내라 가족들의 귀함과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 중간에 낀 나는 조금 애매한 위치였다. 그래서였을까, 새어머니는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항상 나에게 시키셨다.
아버지가 새벽에 초망(투망)을 치러 나가시면, 나는 엄마 대신 가마솥에 불을 지펴 소죽을 끓이고 가족들 먹을 밥을 했다. 밥만 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 대신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논에 가서 물을 대는 일도 내 몫이었다.
겨울이라고 쉴 수도 없었다. 수도 펌프가 얼면 뜨거운 물을 부어 녹여가며 그 찬물에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곤 했다. 사춘기 소녀가 하기엔 힘든 일들이었지만, 나는 싫은 내색 없이 그 일들을 척척 해냈다.
그럴 때마다 옆집 할머니가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나를 가만히 보시곤 했다. 할머니는 그런 내가 가여웠던지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니가 이 집 업(業)이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 인생에 유난히 굴곡이 많은 이유가, 어쩌면 그때부터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는 법을 배워버렸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남들이 시키는 일, 힘든 일 마다하지 않고 척척 해내며 살았던 그 시절. 그 서러웠던 고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거절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하게 해냈던 나의 성실함이 지금의 굴곡진 인생을 만든 걸까 하고. 내가 내 팔자를 스스로 그렇게 만든 건가 싶어 마음이 헛헛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 가마솥 불을 지피던 단단한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내게 닥친 이 수많은 고비들을 60평생 여기까지 끌고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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