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3일 금요일

[인생이야기] 사라진 울진 염전마을의 겨울, 처마 밑 물곰과 아궁이 속 군고구마의 추억

[인생이야기] 사라진 울진 염전마을의 겨울, 처마 밑 물곰과 아궁이 속 군고구마의 추억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오직 제 마음속에만 박제된 소중한 고향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지금은 엑스포 공원이 크게 들어서며 옛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예전 경북 울진 수산리에는 하얀 소금기 바람이 사계절 내내 불어오던 **'염전마을'**이 있었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 딸로 자랐던 그곳에서의 겨울은, 비록 가난했지만 바다가 내어준 선물과 따뜻한 아랫목 덕분에 참으로 풍요로웠습니다.

1. 울진장에서 사 온 겨울 식량, 처마 밑에 걸린 물곰과 양미리

겨울철 울진 장날이 되면 아버지는 울진과 죽변의 명물인 물곰(곰치)과 양미리를 새끼줄에 엮어 한 짐 가득 사 오시곤 했습니다. 커다란 물곰은 처마 밑에 줄줄이 걸어두고 매서운 바닷바람에 꾸덕꾸덕하게 말렸습니다. 양미리 역시 수십 마리씩 엮여 우리 집의 든든한 겨울 식량이 되어주었지요.

요즘은 물곰이 워낙 귀해 '금생선'이라 불린다지만, 그때는 집집마다 처마 밑에 물곰 한두 마리 걸려 있지 않은 집이 없었습니다. 잘 마른 물곰을 내려 신김치 숭숭 썰어 넣고 가마솥에 푹 끓여 먹던 그 시원하고 칼칼한 냄새... 35년 넘게 식당 장사를 하며 수많은 음식을 만져온 저이지만, 그 시절 코끝을 스치던 고향의 맛은 그 어떤 산해진미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2. 수산리 백사장의 도루묵 알과 아궁이 속 노란 군고구마

저희 마을 뒤편은 방파제 하나 없는 너른 백사장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겨울 파도가 매섭게 몰아치고 나면 다음 날 아침, 백사장은 마법 같은 보물창고로 변해 있었지요. 거센 파도에 밀려온 물곰 알과 도루묵 알들이 모래 위를 하얗게 덮곤 했습니다. 아침 일찍 바구니를 들고 나가 모래에 섞인 알들을 주워 담아오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물을 끓이셨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겨울밤의 백미는 바로 아궁이 속에서 익어가는 고구마였습니다. 가마솥에 알이 삶아지는 동안, 아버지는 아궁이 깊숙한 잿더미 속에 고구마를 툭툭 던져 넣어두셨지요. 8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삶아진 도루묵 알을 '톡톡' 터뜨려 먹다 보면, 어느새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군고구마가 익어 나왔습니다.

손을 데어가며 껍질을 까면 올라오던 그 뜨거운 김과 노란 속살... 짭짤한 바다의 알과 달콤한 고구마를 번갈아 먹으며 배를 채우던 그 시절, 우리 8남매에게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잔칫집이었습니다. 얼굴에 검은 재를 묻히고도 서로를 보며 웃던 그 따뜻한 아궁이 앞이 오늘따라 유독 그립습니다.


울진군 수산리 염전마을 백사장 전경
(사라진마을 내고향 염전백사장)
      

3. 기억 속에만 남은 나의 그리운 염전마을을 추억하며

이제 저의 고향 집터에는 거대한 엑스포 공원이 들어서고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가고 싶어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 되었기에 그 시절의 풍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리고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흔했던 물곰과 양미리, 백사장에 지천이던 도루묵 알들, 그리고 장작불 앞에 모여 앉아 고구마를 나눠 먹던 식구들...

비록 마을의 물리적 형태는 사라졌지만, 제 가슴 속에는 여전히 수산리 염전마을의 짭조름한 소금기와 달콤한 군고구마 향기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35년 장사 인생의 고단함 속에서도 저를 버티게 한 것은 바로 이 따뜻한 고향의 기억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바다가 있어 넉넉했고, 식구가 많아 든든했던 그 시절의 겨울이 사무치게 그리운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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