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4일 토요일

[인생이야기] 사라진 고향의 풍경, 상여집의 징 소리와 제주 집 앞의 붉은 황토 흙

[인생이야기] 사라진 고향의 풍경, 상여집의 징 소리와 제주 집 앞의 붉은 황토 흙

살다 보니 잊고 지내는 것이 참 많습니다. 블로그에 하나씩 내 인생 이야기를 풀다 보니 오늘은 유독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풍경 하나가 떠오르네요.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 자리에 늘 있었던 곳, 우리 동네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던 작고 낡은 기와집 한 채. 그게 바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슬픔을 나누던 ‘상여집’이었습니다.

1. 마을의 슬픔과 신명이 공존하던 신비로운 공간, 상여집

지금이야 장례 전문 인력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지만, 그 시절엔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하듯 슬픔을 함께 나눴지요. 마을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그 낡은 기와집에서 화려하면서도 묵직한 상여가 실려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단순히 상여만 보관하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제사를 지내거나 큰 굿판이 벌어질 때 쓰던 장구, 징, 꽹과리 같은 민속 악기들도 모두 그 기와집 안에 고이 모셔두었지요.

어린 우리 눈에는 그 모든 풍경이 경건하기보다 무서웠습니다. 밤이면 상여집 안에서 누군가 징을 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아 오싹했고, 그 근처를 지날 때면 괜히 뒤를 돌아보게 되곤 했습니다. 죽음과 신명이 한 지붕 아래 머물던 그 기묘한 공간은 어린 소녀였던 제게 세상의 깊은 신비로움을 처음 가르쳐준 곳이었습니다.

2. 금줄과 붉은 황토 흙, 신성함을 지키던 엄격한 약속

마을 제사가 있는 해면 집집마다 돌아가며 ‘제주(祭主)’를 맡곤 했습니다. 그해 제주가 된 집은 대문 앞에 푸른 솔잎을 끼운 새끼줄, 즉 금줄을 치고 바닥에는 붉은 황토 흙을 군데군데 놓아두었습니다. “이곳은 지금 신성한 곳이니 부정한 사람은 발을 들이지 마라”는 마을 전체의 무언의 약속이자 엄격한 계율이었습니다.

제사가 끝날 때까지는 이웃들도 그 집 문턱을 절대 넘지 않았고, 제주 가족들도 몸가짐을 극도로 조심하며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7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여의고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던 제게, 대문 앞의 그 붉은 흙은 범접할 수 없는 경계선 같았습니다. 혹여 부정이라도 탈까 봐 숨을 죽이며 그 앞을 지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정성이 곧 신앙이었던 시절의 순수한 풍경이었습니다.

3. 사라진 풍경 속에 묻어둔 어린 시절의 공포와 그리움

참 묘한 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그 상여집도, 대문 앞을 지키던 붉은 흙의 풍경도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언제 헐렸는지, 그 엄격하던 풍습이 언제 멈췄는지 도무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35년 넘게 장사하며 먹고사는 게 바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내 어린 시절의 공포도,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던 그 뜨거웠던 정성들도 그렇게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나 봅니다.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기억이지만, 눈을 감으면 지금도 그 서늘한 기와지붕 아래서 금방이라도 징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이제는 장례식장의 차가운 조명 아래서 기계적으로 이별을 맞이하지만, 가끔은 온 마을이 함께 울고 함께 정성을 들였던 그 상여집 앞마당이 그리워집니다.

여러분의 고향 길에도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하지만 가슴 속엔 여전히 서늘하게 남아 있는 그 무섭고도 그리운 풍경이 하나씩 있으신지요? 오늘 저는 그 사라진 상여집의 문을 다시 열어, 제 인생의 잊혔던 조각 하나를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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