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화요일

[인생 이야기]울진 왕피천의 추억, 아버지의 초망과 8남매를 키운 숭어 이야기

울진 왕피천의 추억, 아버지의 초망과 8남매를 키운 숭어 이야기

​경상북도 울진, 한쪽으로는 왕피천이 흐르고 또 다른 쪽으로는 남대천이 굽이쳐 바다와 몸을 섞는 곳.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 신비로운 길목은 제 고향이자, 우리 8남매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이 담긴 수제 그물, '초망'

​저희 집은 10마지기 남짓한 적은 논으로 여덟 자식을 건사해야 했습니다. 농사만으로는 벅찼기에 아버지는 농사꾼이자 베테랑 어부로 사셔야 했죠. 아버지에게 **'초망(투망)'**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도구이자, 고단한 삶을 달래는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물을 직접 만드시는 장인이셨습니다. 그물 코를 하나하나 잡는 섬세한 작업이 이어질 때면, 아버지의 입가에서는 늘 나지막한 판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한 코 한 코 소리 가락을 얹어 짜 내려간 그물은 아버지의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그물 아래 다는 **'납'**을 만들 때면 집안엔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아버지가 불을 피워 납을 녹이실 때면, 저는 옆에서 부지런히 심부름을 하며 거들곤 했습니다. 뜨겁게 녹아내린 납이 틀에 부어져 묵직한 무게가 될 때마다, 우리 8남매를 지탱하는 아버지의 사랑도 그렇게 단단해졌을 것입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 풍요로운 어장

​매일 새벽 4시, 아버지는 정성껏 만든 초망을 메고 어김없이 바다로 향하셨습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 특유의 환경 덕분에 아버지의 그물에는 늘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숭어: 힘차게 요동치며 올라오던 기수역의 대표 어종
• ​전어: 가을이면 고소한 냄새로 장터를 유혹하던 생선
•황어: 강물과 바닷물을 오가며 우리 가족의 단백질이 되어준 고기
​이 세 종류의 물고기만으로도 우리 가족의 식탁은 풍성했고, 고기를 보는 안목이 탁월하셨던 아버지의 어깨는 늘 당당하셨습니다.

생선 다라이를 머​생리에 이고 걷던 등굣길

​고기가 유난히 많이 잡히는 날이면, 새엄마와 저는 싱싱한 생선이 가득 담긴 커다란 **'다라이(함지박)'**를 머리에 이고 먼 장터까지 걸어갔습니다. 어린 내 목을 짓누르던 그 묵직한 무게를 견디며 생선을 다 팔고 나서야 저는 학교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교실에 앉아 있으면 손끝에 남은 생선 비린내가 부끄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것은 우리 가족이 치열하게 살아낸 훈장이자 긍지였습니다.

오늘따라 왕피천의 윤슬 위로 그물을 힘껏 던지시던 아버지의 투박한 손마디와, 귓가에 맴도는 판소리 한 자락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다음 편에는 "후리"로 멸치를 잡던 활기찬 바다 풍경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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