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30년 전 그날, 아버지의 목소리와 맞바꾼 둘째 딸의 탄생
인생은 때때로 잔인할 만큼 공평하지 못합니다. 제게는 30년 전, 둘째 딸을 낳던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우리 8남매는 제가 고작 일곱 살이던 어린 나이에 엄마를 여의었습니다. 엄마의 빈자리까지 채워주려 평생을 애쓰셨던 아버지는 워낙 자상하신 분이라, 우리 남매들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이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후두암에 걸리셨다는 사실을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삭의 몸인 제가 혹여 충격을 받아 배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온 가족이 입을 모아 저에게만 비밀로 했던 것입니다. 막내딸처럼 애지중지하시던 일곱째 딸이 무사히 아이를 낳기만을 바랐던 아버지의 마지막 배려였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를 낳기 며칠 전, 큰형부와 언니가 갑자기 저를 찾아와 맛있는 밥을 사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저는 직감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요. 아버지가 후두암이고 곧 수술을 하신다는 소식은 제게 청천벽력과도 같았습니다. 식당 한복판에서 숟가락을 놓지도 못한 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평소 판소리를 정말 좋아하시고 또 동네에서도 잘하신다고 소문이 날 만큼 흥이 많던 분이셨습니다. 기분 좋을 때면 우렁찬 목청으로 뽑아내던 그 가락은 우리 남매들에게는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앗아가는 수술이라니, 아버지는 당신의 즐거움이었던 소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홀로 견디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얄궂게도 아버지가 대학병원에서 수술대에 오르시던 바로 그날, 저에게도 둘째 딸을 만나기 위한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암세포와 싸우며 그 좋던 목청을 차가운 수술대 위에 내려놓고 계실 때, 저 역시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제 몸 아픈 것보다 아버지의 수술 결과가,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그 판소리 가락을 다시 들을 수 있을지가 더 걱정되어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한쪽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의 앙칼진 첫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아버지는 평생의 낙이었던 소리를 영영 잃어가고 계셨던 그 기막힌 순간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그 이후로 다시는 말씀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우리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따뜻한 음성은 물론, 흥겹게 부르시던 판소리 한 대목도 수술과 동시에 영원히 멈춰버린 것입니다. 소리를 사랑하던 분이 이제는 목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힘겹게 숨을 쉬며, 오로지 눈빛과 투박한 손짓으로만 그 깊은 사랑을 전하셔야 했습니다. 갓 태어난 둘째 딸이 옹알거리며 세상의 소리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 정작 그 아이의 할아버지는 평생의 즐거움이었던 목소리를 잃으셨다는 사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덩어리진 응어리로 남아 저를 아프게 합니다.
세월이 흘러 30년 전 그날 태어난 둘째 딸이 어느덧 제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지금도, 저는 딸아이의 생일이 되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납니다. 이제는 담담하게 추억할 수 있는 세월이 되었지만, 그때 흘렸던 눈물은 제 인생에서 가장 짜고 뜨거운 눈물이었습니다. 엄마 없는 빈자리를 자상한 성품과 소리 한 자락으로 채워주려 노력했던 나의 아버지. 일곱째 딸은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기분 좋게 부르시던 그 판소리 가락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목소리는 잃으셨어도 끝까지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주셨던 아버지의 그 거대한 사랑으로, 저는 오늘도 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정성껏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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