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야기] 35년 전, 양수 터지는 줄도 모르고 바느질하던 그날의 출산기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시절 고생한 이야기를 훈장처럼 늘어놓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 여자들에게는 그보다 더 치열하고 생생했던 '출산'이라는
인생의 전장이 있습니다.
가르쳐주는 이 없어도 본능으로 견뎌냈던, 제 인생의 첫 번째 출산 이야기를
담담히 기록해 보려 합니다.
홈패션 작업대 앞에서의 만삭의 하루
7살 어린 나이에 친정엄마를 여의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저에게 ‘출산’은
막막한 숙제와 같았습니다.
35년 전, 첫 딸을 가졌을 때 저는 홈패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좁은 작업실에서 만삭의 몸으로 원단을 끊고 미싱을 돌리며 하루를
보냈지요.
그때는 양수가 터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몸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낳으러 가기 직전까지 작업대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리만큼 용감했던 초보 엄마였습니다.
"든든히 먹어야 힘을 쓰지!" 이웃 아주머니의 조언
진통이 간간이 밀려오는데 가게를 지나던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제 배를 보더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새댁, 애 낳으러 갈 때 배고프면 힘 없어서 못 낳아. 무조건 든든히 먹고 가!"
친정엄마가 계셨다면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에 고생한다"고 일러주셨겠지만,
저는 그 아주머니 말씀이 정답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 말만 믿고 밥을 꾹꾹 눌러 한 그릇 든든하게 먹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관장과의 사투, 그리고 엄마의 기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사 선생님의 호통이 떨어졌습니다.
"양수가 이미 다 터졌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참았느냐"는 것이었죠.
그 당혹감도 잠시, 든든하게 먹고 온 밥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사실 애 낳는 고통보다도 관장 때문에 정신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게
훨씬 더 힘들고 진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제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우리 아기만 무사히 나오게 해주세요.
저는 아무리 아파도 괜찮으니 우리 아이만 건강하게 해주세요."
내 몸이 타 들어가는 아픔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나보다 내 안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홀로 선 첫걸음
친정엄마의 따뜻한 조언 한마디 없었지만, 저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엄마가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었고, 때로는 외로움이 스승이었습니다.
밥 많이 먹고 가서 고생했던 그 서툴렀던 초보 엄마는, 그날 이후 비로소 한
아이를 책임지는 단단한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다"고 외치게 된 저의 강인함은 아마 그 서툴렀던
첫 출산의 기억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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