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9일 월요일

[인생 이야기] 노란 위액을 토하며 견뎠던 그 시절, 당연하지 않았던 인내

[인생 이야기] 노란 위액을 토하며 견뎠던 그 시절, 당연하지 않았던 인내

​35년 장사 인생을 돌아보면 참 모진 세월을 잘도 버텼다 싶습니다. 
하지만 그 맷집 좋던 저도 문득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첫딸을 임신했을 때, 지독했던 멀미와 입덧을 견디며 시댁으로 향하던 그 길에 대한 기록입니다.

​1. 비포장도로 위, 지옥 같았던 시외버스 60분

​저는 본래 차 멀미가 유독 심한 체질입니다. 
지금도 차만 타면 속이 울렁거려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은데, 당시 임신 입덧까지 겹친 상태에서의 버스 이동은 말 그대로 '고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자가용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시외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려가,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20분을 더 가야 시댁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도로는 지금처럼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의 진동, 그리고 차 안을 가득 채운 독한 경유 냄새는 제 감각을 마비시켰습니다. 
10분만 지나도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고 눈앞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뱃속 아이를 생각해 뭐라도 먹어야 했지만, 입덧 때문에 속은 이미 비어 있었고 나올 것이 없는데도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노란 쓴물이 올라올 때까지 구역질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노란 위액을 토해내며 간신히 버티던 그 60분은 제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습니다.

​2. 도착한 시댁, 쉴 곳 없던 며느리의 주방

​기진맥진해서 시댁 대문을 들어서면 당장이라도 차가운 방바닥에 쓰러져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산부 며느리를 위한 배려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멀미로 하얗게 질린 제 얼굴을 보며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시댁 오기 싫어서 일부러 꾀병 부리는 것 아니냐"는 차가운 말들을 던졌습니다.
​그 서슬 퍼런 눈치 속에서 저는 눕는 대신 주방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속은 여전히 뒤집혀 비릿한 음식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주방 한구석에서 설거지를 하고 나물을 다듬으며 일손을 보탰습니다. "나도 사람인데, 나도 임신해서 힘든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며 배운 '인내'라는 굴레가 제 입을 꾹 닫게 만들었습니다.


​3. 가장 가까운 보호자, 남편의 야속한 외면

​가장 야속한 것은 단연 남편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제가 노란 쓴물을 쏟아내며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옆에서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가 바로 남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댁 식구들이 저를 꾀병으로 몰아세울 때, 남편은 제 편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인 어머니의 말에 동조하며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내의 하얗게 질린 입술보다 어머니의 기분을 살피는 것이 효도라고 믿었던 그 사람. 가장 의지해야 할 남편이 '남의 편'이 되어 저를 사지로 몰아넣는 것 같은 기분은 노란 위액보다 더 쓰고 비참하게 가슴에 남았습니다. 
요즘 세상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의 제 남편은 유독 그 고집과 무심함이 심했습니다.

​4. 시대를 버텨온 모든 어머니께 건네는 위로

​돌이켜보면 그 시절 대부분의 여성이 비슷한 무게를 견디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았다"는 말이 제 상처를 지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 모진 시간을 묵묵히 버텨냈고, 그 독한 인내가 지금의 저를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3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나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아픔을 숨기고 있을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당신은 그 무엇보다 먼저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사람이라고요. 
저는 이제 블로그라는 저만의 공간에서 그 시절 삼켜야 했던 노란 쓴물의 기억들을 하나씩 쏟아내며 스스로를 치유해 보려 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인생이야기: 입덧 속에 치러진 상가 계약, 35년 전 그날의 서글픈 풍경

  인생이야기: 입덧 속에 치러진 상가 계약, 35년 전 그날의 서글픈 풍경 첫째 때부터 이어진 장사, 그리고 입덧과 함께 찾아온 둘째 저는 첫째 아이를 키울 때부터 이미 장사 전선에 뛰어들어 쉼 없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홈패션 가게를 꾸려가며 8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