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야기] 전셋집 대신 장사 밑천을 택한 60만원 삵월세의 결단
1. 2,000만 원 전셋집 대신 택한 60만 원 삯월세의 삶
35년 전, 우리 부부가 처음 손을 잡고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로 나설 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남들처럼 번듯한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당장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한 종잣돈을 만드느냐였습니다. 제가 살던 지방에서도 당시 괜찮은 전셋집을 구하려면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며 일찍이 세상 물정을 깨우쳤던 저에게 그 큰 전세금은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진 전 재산을 주거비로 묶어두는 것이 못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보증금 없이 10달치 방세를 미리 내는 '60만 원 삯월세' 단칸방이 우리의 첫 보금자리였습니다.
문을 열면 바로 코앞이 부엌이고,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초라한 방이었지만,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전세금으로 들어갈 뻔한 소중한 자금을 고스란히 장사 밑천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2. 혼수도 생략하고 살림살이도 최소화한 '현실 신혼'
삯월세 단칸방에 들어가면서 화려한 혼수는 사치였습니다.
방 하나에 부엌 하나가 전부인 그 좁은 공간에 남들 다 하는 커다란 장롱이나 화장대를 들일 자리는 애초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갖추고 들어갔습니다.
이불 몇 채와 냄비 몇 개가 우리 살림의 전부였지요.
혼수 대신 우리가 선택한 것은 시장 골목 한구석의 조그만 '홈패션 가게'였습니다.
남들은 신혼 가구 보러 다닐 때, 저는 시장 바닥에서 미싱을 돌리고 원단을 끊어왔습니다.
비록 남들 보기에 시작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살림이었지만, 저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좁은 방에서 아침마다 가게로 나설 때의 그 설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60만 원 삯월세방은 잠만 자는 곳이었고, 저의 진짜 인생은 시장 골목 미싱 앞에서의 치열한 삶 속에 있었습니다.
3.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는 패기로 일궈낸 세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에게는 정말 대단한 '패기'가 있었습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시작했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젊으니까 몸으로 때우면 된다", "열심히 노력하면 세상에 안 될 게 없다"는 무모하리만큼 뜨거운 믿음이 저를 지탱해주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우리만의 힘으로 일어서겠다는 그 고집이 있었기에, 3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영업의 풍파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집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고난을 이겨낼 동지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2,000만 원 전셋집이 주는 안락함보다 60만 원 삯월세가 주는 절박함이 저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 특히 새로운 시작을 앞둔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시작의 모습이 조금 초라하다고 해서 결코 인생까지 초라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결핍과 패기가 당신을 가장 강력한 성공의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