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3일 화요일

[인생 이야기] 전셋집 대신 장사 밑천을 택한 60만원 삵월세의 결단

[인생 이야기] 전셋집 대신 장사 밑천을 택한 60만원 삵월세의 결단

1. 2,000만 원 전셋집 대신 택한 60만 원 삯월세의 삶

​35년 전, 우리 부부가 처음 손을 잡고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로 나설 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남들처럼 번듯한 전셋집에서 신혼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당장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한 종잣돈을 만드느냐였습니다. 제가 살던 지방에서도 당시 괜찮은 전셋집을 구하려면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며 일찍이 세상 물정을 깨우쳤던 저에게 그 큰 전세금은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진 전 재산을 주거비로 묶어두는 것이 못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우리만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보증금 없이 10달치 방세를 미리 내는 '60만 원 삯월세' 단칸방이 우리의 첫 보금자리였습니다. 
문을 열면 바로 코앞이 부엌이고,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초라한 방이었지만,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전세금으로 들어갈 뻔한 소중한 자금을 고스란히 장사 밑천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2. 혼수도 생략하고 살림살이도 최소화한 '현실 신혼'

​삯월세 단칸방에 들어가면서 화려한 혼수는 사치였습니다. 
방 하나에 부엌 하나가 전부인 그 좁은 공간에 남들 다 하는 커다란 장롱이나 화장대를 들일 자리는 애초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갖추고 들어갔습니다. 
이불 몇 채와 냄비 몇 개가 우리 살림의 전부였지요. 
혼수 대신 우리가 선택한 것은 시장 골목 한구석의 조그만 '홈패션 가게'였습니다.
​남들은 신혼 가구 보러 다닐 때, 저는 시장 바닥에서 미싱을 돌리고 원단을 끊어왔습니다. 
비록 남들 보기에 시작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살림이었지만, 저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좁은 방에서 아침마다 가게로 나설 때의 그 설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60만 원 삯월세방은 잠만 자는 곳이었고, 저의 진짜 인생은 시장 골목 미싱 앞에서의 치열한 삶 속에 있었습니다.

​3.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는 패기로 일궈낸 세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에게는 정말 대단한 '패기'가 있었습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시작했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젊으니까 몸으로 때우면 된다", "열심히 노력하면 세상에 안 될 게 없다"는 무모하리만큼 뜨거운 믿음이 저를 지탱해주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우리만의 힘으로 일어서겠다는 그 고집이 있었기에, 3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영업의 풍파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집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고난을 이겨낼 동지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2,000만 원 전셋집이 주는 안락함보다 60만 원 삯월세가 주는 절박함이 저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 특히 새로운 시작을 앞둔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시작의 모습이 조금 초라하다고 해서 결코 인생까지 초라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결핍과 패기가 당신을 가장 강력한 성공의 길로 안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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