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3일 화요일

[인생 이야기]60만 원 삭월세에서 이룬 자수성가,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통해 배운 삶의 당당함

[인생 이야기]60만 원 삭월세에서 이룬 자수성가,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통해 배운 삶의 당당함

1. 20대 후반, 가난했지만 뜨거웠던 시작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자란 저에게 '가정'은 늘 지키고 싶은 소중한 꿈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의 시작은 60만 원 삭월세 단칸방이었지만, 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좁은 방은 제가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죠. 15년의 홈패션 경력과 이후 20년의 식당 운영을 가능케 했던 저의 억척스러운 근성은 바로 이 삭월세 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 1년 만에 달성한 전셋집 장만과 예기치 못한 갈등

​잠을 줄이고 먹고 싶은 것을 아껴가며 오로지 '내 집, 내 가게'를 목표로 달린 지 딱 1년. 드디어 2,000만 원이라는 전세금을 모아 가게가 딸린 새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기쁨도 잠시, 이삿날 찾아오신 시어머니는 축하 대신 비수를 꽂으셨습니다.
 "혼수를 제대로 해오지 않아 집안이 초라하다"는 트집이었습니다.

​3. 부당한 대우에 던진 당당한 한마디: "혼수 대신 선택한 장사 밑천"

​평소 기가 센 시어머니 밑에서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참아왔던 저였지만, 그날만큼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 노력이 부정당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당찬 한마디가 터져 나왔습니다.
​"어머니, 그럼 어머니도 친구분들처럼 든든한 전셋집 하나 구해주셔요. 그러면 우리 아버지도 논 팔아서라도 혼수 최고로 해주실 거예요. 혼수 할 돈 아껴서 장사 밑천 삼아 1년 만에 이 집 마련한 거 모르시나요?"
​이 말 한마디에 평소 기세등등하던 시어머니도 입을 꾹 다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말대꾸가 아니라, 제 삶에 대한 정당한 방어였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얘기할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죠. 그날처럼  다는것들도 참지않고 맞섰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두고두고 하게됩니다.

​4. 시집살이의 눈물을 버티게 한 것은 결국 '엄마'라는 이름

​지금 돌아보면 20대 후반의 저는 참으로 여리고 순수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지금처럼 영악했거나 나만을 생각했다면, 아이가 생기기 전 부당한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고, 제 꿈을 꺾이게 하고싶지 않았읍니다.

​5. 인생의 고난을 대하는 자세

​그 후로도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계속되었고 저는 수차례 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진 시간들은 저를 더 단단하게 단련시켰습니다. 
부당한 상황에서도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 반드시 결과로 보상받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35년 자영업 인생의 기초는 화려한 혼수가 아니라, 바로 그 서러운 눈물을 닦으며 세운 '오기'와 '열정'이었습니다.

다음편에는  결혼하고 갑자기 효자노릇하는  아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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