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야기]60만 원 삭월세에서 이룬 자수성가,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통해 배운 삶의 당당함
1. 20대 후반, 가난했지만 뜨거웠던 시작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자란 저에게 '가정'은 늘 지키고 싶은 소중한 꿈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의 시작은 60만 원 삭월세 단칸방이었지만, 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좁은 방은 제가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죠. 15년의 홈패션 경력과 이후 20년의 식당 운영을 가능케 했던 저의 억척스러운 근성은 바로 이 삭월세 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 1년 만에 달성한 전셋집 장만과 예기치 못한 갈등
잠을 줄이고 먹고 싶은 것을 아껴가며 오로지 '내 집, 내 가게'를 목표로 달린 지 딱 1년. 드디어 2,000만 원이라는 전세금을 모아 가게가 딸린 새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기쁨도 잠시, 이삿날 찾아오신 시어머니는 축하 대신 비수를 꽂으셨습니다.
"혼수를 제대로 해오지 않아 집안이 초라하다"는 트집이었습니다.
3. 부당한 대우에 던진 당당한 한마디: "혼수 대신 선택한 장사 밑천"
평소 기가 센 시어머니 밑에서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참아왔던 저였지만, 그날만큼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 노력이 부정당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당찬 한마디가 터져 나왔습니다.
"어머니, 그럼 어머니도 친구분들처럼 든든한 전셋집 하나 구해주셔요. 그러면 우리 아버지도 논 팔아서라도 혼수 최고로 해주실 거예요. 혼수 할 돈 아껴서 장사 밑천 삼아 1년 만에 이 집 마련한 거 모르시나요?"
이 말 한마디에 평소 기세등등하던 시어머니도 입을 꾹 다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말대꾸가 아니라, 제 삶에 대한 정당한 방어였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얘기할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죠. 그날처럼 다는것들도 참지않고 맞섰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두고두고 하게됩니다.
4. 시집살이의 눈물을 버티게 한 것은 결국 '엄마'라는 이름
지금 돌아보면 20대 후반의 저는 참으로 여리고 순수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지금처럼 영악했거나 나만을 생각했다면, 아이가 생기기 전 부당한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고, 제 꿈을 꺾이게 하고싶지 않았읍니다.
5. 인생의 고난을 대하는 자세
그 후로도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계속되었고 저는 수차례 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진 시간들은 저를 더 단단하게 단련시켰습니다.
부당한 상황에서도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 반드시 결과로 보상받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35년 자영업 인생의 기초는 화려한 혼수가 아니라, 바로 그 서러운 눈물을 닦으며 세운 '오기'와 '열정'이었습니다.
다음편에는 결혼하고 갑자기 효자노릇하는 아들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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