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일 일요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던 꿈과 재봉틀 소리에 묻어둔 서러움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던 꿈과 재봉틀 소리에 묻어둔 서러움

둘째 딸의 탄생은 제게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한 기회였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로 자라며 늘 따뜻한 엄마의 품이 그리웠던 제게, 내 아이를 온전히 내 손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이었지요. 이번만큼은 내가 직접 고운 천을 골라 포근한 이불을 지어 아이를 입히고,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온종일 곁에서 지켜보며 키우고 싶었습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온기를 아이에게 오롯이 나누어주는 것, 엄마로서 그 당연하고 소박한 행복을 누려보는 것이 제게는 인생의 가장 큰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그 작은 바람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제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주기는커녕, 산후조리도 채 끝나지 않은 저를 다그치며 하루라도 빨리 홈패션 가게로 복귀하기만을 바랐습니다. 갓 해산한 몸은 찬바람만 스쳐도 뼈마디가 시려 왔지만, 남편의 눈에는 밀려드는 주문과 가게 운영이 먼저였나 봅니다.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을 비비며 젖을 물려야 할 시기에, 저는 가게의 서늘한 천 먼지와 삭막한 재봉틀 소리를 먼저 마주해야 했습니다. 가게 문을 열 때마다 느껴지던 그 차가운 공기는 제 서러운 마음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엄마로서 아이 곁을 지키고 싶었던 제 간절한 소망은 그렇게 남편의 완강한 고집 앞에 속절없이 꺾여버렸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남편이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어머니를 저희 집으로 모셔온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실 테니 저는 집안일이나 육아 걱정 말고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데만 전념하라는 식이었지요. 하지만 시어머니와 한집에 살며 아이를 맡기고 장사를 나가는 일은 제게 지독한 스트레스였습니다. 내 아이인데도 내 마음대로 안아주거나 얼러주지 못하고, 살림살이 하나하나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그 시간은 숨이 막힐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도 집에서 아이가 울고 있지는 않을지, 시어머니가 불편해하시지는 않을지 걱정하느라 제 마음은 단 한 순간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홈패션 가게에 앉아 차가운 재봉틀 앞에 앉아 있을 때면, 손님들의 이불을 지으면서도 제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이 덮을 포근한 침구는 정성껏 만들면서 정작 내 아이는 남의 손에 맡겨두고 온 현실이 너무나 비참해 재봉틀 소리에 맞춰 남몰래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35년 자영업 인생 중 그때만큼 몸과 마음이 고달팠던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로서의 권리마저 빼앗긴 채 그저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기계가 된 것만 같은 서러움에, 앞치마 끈을 조여 맬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시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속사정은 아랑곳없이 세상은 무심히도 흘러갔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들은 남편의 속마음은 저를 더욱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은 나중에야 그때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하더군요. 본인의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시고 아내는 밖에서 착실히 홈패션 장사를 해오니, 집안이 화목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제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서러워했던 것,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숨죽여 지냈던 그 고통은 꿈에도 모른 채 본인만 행복했다고 말하는 남편이 너무나 야속해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따뜻했던 기억이, 그 시간을 온몸으로 버텨낸 제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서러운 멍울이 된 셈입니다.

이 모든 마음의 짐 속에서 저를 더 아프게 했던 건 바로 친정아버지의 소식이었습니다. 평생 그토록 판소리를 좋아하고 잘하시던 우리 아버지는, 하필 제가 이 모진 풍파를 겪던 시기에 수술을 받으셨고 그와 동시에 영영 목소리를 잃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소리가 끊긴 그 적막한 고통과 아이를 직접 키우지 못하는 미안함을 동시에 짊어진 채, 억척스럽게 재봉틀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다시는 아버지의 구성진 판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슬픔이 가슴을 후벼 팠지만, 저는 울음을 삼키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게를 지켰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서러움은 흉터처럼 남았지만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지켜낸 이 소중한 가족들이 있기에 오늘도 저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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