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새 아파트라는 화려한 감옥, 그 안에서 홀로 삼킨 피눈물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삶이었습니다. 대기업 다니는 남편에 번듯한 내 집 마련, 그리고 갓 뽑은 새 차까지. 하지만 그 눈부신 화려함은 저를 가두는 거대한 유리성이었고, 그 안에서 제 속은 시커먼 숯덩이가 되어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남들의 부러움 섞인 인사가 차가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히던 그 시절, 저는 화려한 껍데기를 유지하기 위해 제 영혼을 갈아 넣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평온한 바다 같았으나, 그 아래에는 저를 집어삼킬 듯한 거센 파도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특히 제가 장사하던 곳이 바로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의 상가였기에, 저는 단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제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이웃들이 곧 제 손님이었고 제 평판이 바로 가게의 목숨줄이었으니, 집안의 치부를 들키지 않으려 저는 매일같이 아무 일 없는 척 웃음을 지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기세가 참으로 드셌습니다. 다들 음성도 크고 성격들이 불 같아서, 한번 소란이 일면 아파트 복도까지 목소리가 새 나가는 건 예삿일이었지요. 남편의 외도를 알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도, 저는 큰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습니다. 행여나 그 큰 목소리들이 밖으로 새 나가 동네에 소문이라도 날까 봐, 내 얼굴에 침 뱉기 될까 봐 입술을 깨물며 참아냈습니다.
당시 남편이 다니던 회사는 마치 기괴한 열병이라도 도는 것 같았습니다. 직원들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무슨 유행이나 훈장이라도 되는 양 휩쓸려 다니던 기막힌 시절이었지요. 주변 아주머니들이 조심스레 다가와 "거기도 조심해야겠어"라며 충고를 해줄 때마다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보같이 그 말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내가 이만큼 희생하고 있고,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설마 내 남편까지 그 몰상식한 열병에 휩쓸렸을 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더 미친 듯이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사실 그 시절 제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이름은 친정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으려 애쓰셨지요. 병세가 조금이라도 나아져 기운을 차리시면, 고향 바다로 내려가 당신의 유일한 낙인 초망(투망)을 치러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나가시곤 했습니다. 어스름한 새벽녘, 아픈 몸을 이끌고 바다를 향해 그물을 던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메어옵니다. 아버지는 딸이 대기업 사위 만나 번듯하게 잘 사는 모습이 당신 인생의 마지막 훈장인 양 기뻐하셨기에, 저는 그 앞에서 차마 제 불행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습니다. 밖으로 새 나갈까 무서운 시댁 식구들의 큰 목소리를 안으로 삼키며, 아버지의 그 무구한 믿음을 지켜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살았는지, 왜 나 자신을 그토록 처참하게 방치하며 남의 인생 황금기만 만들어주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입니다. 시댁 식구들의 드센 기세에 눌려, 그리고 동네 소문이 무서워 숨죽였던 그 세월들이 이제 와서야 "참으로 고단했노라"는 깊은 탄식으로 남습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그 화려했던 시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는 그게 인생의 가장 큰 고비인 줄 알았지만, 사실 그것은 앞으로 닥쳐올 더 거대한 시련들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그때 그 화려한 거실에서 홀로 삼켰던 눈물은,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폭풍우를 견디기 위한 눈물겨운 예방주사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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